故 김기원 교수님을 기리며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진보경제학계의 중진학자인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가 지난 7일 지병으로 향년 61살의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은 생전에 많은 경제 기자들에게 좋은 인터뷰 상대였다. 특히 필자에게는 스승과 같은 분이었다.


김 교수의 타계가 안타까운 것은 단순히 개인적 친분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사회가 그 분의 가르침을 꼭 필요로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논리에 의해 질식하기 일보직전이다. 모든 정치·경제·사회 문제가 저열한 편싸움 속에서 해법을 못찾고 표류 중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강조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직성 문제는 그 좋은 예다. 한국 노동시장은 경직성과 불안정성이라는 이중과제를 안고 있다. 이 둘을 함께 해결하지 않고, 둘 중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사회갈등만 키워 파국을 재촉하는 짓이다.


많은 국민이 진영논리의 폐해에 공감하지만 대부분은 술자리의 불만에 그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를 몸으로 직접 실천한 지식인이었다. 고인은 8·15 해방 직후 한국의 경제상황을 주제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경제학)를 땄다. 이후 한국경제의 핵심 이슈인 재벌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하며 “재벌개혁만이 재벌이 살 길”이라고 주장했고, 참여연대를 통해 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최근에는 북한사회 문제로 관심의 영역을 확대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전형적인 진보 색깔의 경제학자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진영논리에 기댄 기득권 세력과 편협한 사고방식과의 치열한 승부였다. 고인은 진보진영이 흔히 비판받는 ‘경직성’과 ‘도그마’를 경계했다. 고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경제문제를 다룰 때는 근본 원칙부터 재점검하고 ‘한국현실에 입각한 진단과 대안 제시’를 원칙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진보진영과의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 ‘창비주간논평’에 기고한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이라는 글을 통해 회사의 정리해고 결정에 항의해 200일 넘게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씨에게 공감을 보이면서도 “목표가 실현 가능해야 (노동)운동도 지속가능하다”며 합리적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고인은 경쟁력 약화로 위기에 처한 기업의 구조조정을 인정하되 그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은 실업수당 확대, 재취업 적극 지원 등의 복지 강화를 통해 해결하는 ‘유연안정성 모델’을 제안했다. 고인은 1999년 대우자동차 매각이 추진되면서 일부에서 외국자본 인수 반대와 국유화론이 제기될 때도 비현실적이라며 비판했다. 고인은 시장의 폐해(실패)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시장경제 원리를 존중했다. 


고인이 2012년에 펴낸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는 좌우 진영논리 극복을 위한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다. 고인은 “일부 진보파처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그저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실천 가능한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제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앞으로 진보, 개혁, 평화세력이 집권할 경우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고인은 최근 북한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개인비용을 들여 북한을 수차례나 방문했다. 북한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대안제시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진영논리에서 자유롭고 학자적 양심에 투철했던 선생을 잃은 것은 우리사회의 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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