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선거와 자민당의 방송통제 시도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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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지난달 20일 도쿄 소재 주요 방송사 편성국장, 보도국장 앞으로 한 통의 문서가 전달됐다. 발신인은 집권 자민당 하기우타 고이치 자민당 부간사장과 후쿠이 데리 보도국장으로 ‘선거기간 보도의 공평 중립 및 공정확보에 관한 요청’이라는 제목의 문서였다. 하기우타 의원은 아베 수상의 핵심 측근 중 한 사람이다.


자민당은 이 문서에서 “중의원 선거는 선기기간이 짧은 관계로 보도내용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에 어떤 방송국이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서 편향보도를 하고 이를 자랑하기도 해 사회적인 문제가 된 사례도 있었다”며 출연자의 발언 횟수 및 시간, 게스트 출연자의 선정, 거리 인터뷰와 자료영상 사용 등에 정치적 입장이 강조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자민당이 문서를 보낸 계기는 아베 수상이 출연한 11월18일자 TBS 뉴스 프로그램.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인 거리 인터뷰가 방송되자 게스트로 출연한 아베 수상이 비판적인 의견을 의도적으로 선별했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다음날에도 아베 수상의 해산 기자회견에 대해서 같은 방송국 정보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결국 뭐 때문에 해산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발언, 총리관저가 편향보도라고 방송국 경영진에게 항의했다. 이게 항의할 수준인가. 


자민당이 방송사에 협조요청을 보낸 사실이나 TBS에 항의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11월27일이다. 이 기간 동안 문서를 받은 모든 방송사가 함구로 일관했다. 단신 보도도 없었다. 신문사들이 관심을 가지자 “지금처럼 공정하고 중립적인 보도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미온적인 답변을 내놓는 데 그쳤다. 


오비이락인지 아베 총리에 비판적인 평론가의 토론프로그램 출연이 갑자기 취소됐다. 방송국에 대한 자민당의 압력이 알려진 뒤 이틀이 지난 11월29일에 벌어진 일이다. “질문이 특정 정당(자민당)에 집중되어 공정성을 갖추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출연을 취소한 방송사의 설명이다. 결국 방송은 각 정당을 대표하는 정치인 게스트들로만 채워졌다. 정치가들로만 채워지면 공정성이 확립되는 것인가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대목이다. 자민당은 방송국에 협조요청을 한 것에 대해서 “보도자유를 존중한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보도 각사는 공정한 보도를 당연히 해나갈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닛케이신문의 취재에 회답했다. 공정·중립 보도는 방송법에도 규정되어 있고 이를 확인한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권권력이 언론사에 대해서 ‘공정·공평 보도’를 요청하는 것은 언론사 입장에서 보면 선거에 불리한 보도를 막으려는 압력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권력이 공정보도, 객관보도, 보도의 균형을 요청할수록 언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영 방송사의 면허 인허가권과 관리감독권은 총무성이 쥐고 있다. 방송사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NHK는 국회에서 예산 심의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차지한 집권여당의 심기를 건드리기 힘들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이 특정 방송사도 아니고 주요 전국 방송사에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협조공문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은 자민당이 이번 총선을 통해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공정·중립 보도를 요구하는 자민당의 정중한 요청에 더더욱 힘이 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산케이신문은 아베 수상이 자사 신문의 칼럼에 대해 발언했다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게재했다. 아베 수상이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게재한지 1시간 만의 일이다. 아베 수상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신문이나 평론가들에게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것이 아베 수상이 인식하는 정치와 미디어의 ‘새로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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