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보내며 다짐했죠…행복의 시간을 미루지 않겠다고"

홀로 아들 키우는 강남구 전 O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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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전 OBS 기자

“경주마와 야생마가 있어요. 누가 더 행복할 것 같아요?” “자유로운 야생마 아닐까요?” “그런데 야생마에게는 망아지가 한 마리 딸려 있어요. 자유로운 숲이나 산으로 갈래요, 아니면 아늑한 잠자리와 정기적인 식사가 제공되는 경마공원으로 갈래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책임져야 하는 식구가 있다면 쉬이 자유만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진 강남구 전 OBS 기자는 누구라도 쉽게 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강 전 기자는 가야 할 곳만 열심히 달리면 안정된 길이 보장되는 경주마의 삶을 버리고, 불안정할지언정 따스한 햇볕과 풀잎에 맺힌 이슬, 부드러운 흙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야생마의 삶을 택했다. 자신의 자유와 시간, 아들 민호와의 교감을 중히 여긴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2012년 5월12일 아내와 사별했습니다. 아내의 시신 앞에서 슬픔에 젖었던 그 때, 다짐했어요. 행복의 시간을 유예하지 않겠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미래의 행복 때문에 희생시키지 않겠다고.”


그러나 선택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생계에 대한 고민이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아내가 떠난 뒤에도 2년6개월 동안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다. 동료들의 배려로 오후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아침뉴스 앵커를 1년간 했고 육아휴직으로 1년을 보냈다. 복귀한 후에는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국제부에서 6개월간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와 집안일을 병행해야 하는 삶은 점점 그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의 시간과 정서에 맞춰졌던 몸과 마음은 아침부터 참수영상을 봐야 하는 국제부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이와의 관계도 악화됐다. 결국 지난달 그는 15년 기자생활을 마감하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다행히 대치동 논술강사 경험을 살려 20여명의 아이를 모았고 논술을 가르치며 어느 정도 생계를 꾸릴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그의 시계는 새롭게 맞춰졌다. 기자 생활을 하며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빴던 하루가 아이와 함께 있으면 아주 천천히 흘렀다. 이를테면 햇볕의 그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낄 정도로. 어제와 똑같았던 오늘이 매일 달라졌다.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시간을 허비했던 거죠.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4~5학년 정도 돼 자립심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함께 놀아줄 생각이에요.”


그는 이 선택이 절대 희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이는 아이의 삶이 있고, 저는 저의 삶이 있습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에요. 행복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 아이가 저한테 미안할 필요도 없고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위한 선택인 만큼 ‘잘할 수 있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 읽고 쓰는 것에 아늑함을 느껴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연재했고 오는 15일에는 아내가 떠난 뒤 2년6개월간의 기록을 담은 수필집도 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업무에 치여 제대로 엄마, 아빠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이번에 쓴 수필집은 일종의 반성문입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반성이죠. 너무 바쁘다보니 아이랑 같이 있을 시간이 없었고 항상 아내와 아이의 잠든 모습만 봤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대한민국에 반드시 필요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만두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가족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특별한 곳을 가지 않더라도 함께 있어주는 것, 같이 하는 것의 중요함을 느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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