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손제민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손제민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헐크 호건에게 매달린 5세 아이의 심정이었다.”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총으로 쏴죽인 경찰관 대런 윌슨이 지난 9월 검사와 대배심 배심원들에게 한 이 말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직관적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 같다. 비록 18세 고교졸업생이지만 키가 195㎝로 별명이 ‘빅 마이크(Big Mike)’였던 브라운은 “악마”로도 묘사됐다. 게다가 그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치고, 경찰관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총에 맞은 뒤에는 성난 모습으로 변해 총을 겨누고 있던 경찰관을 향해 돌진했다지 않는가. 브라운은 쓰러지는 도중에도 머리에 추가로 총을 맞아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브라운의 모습은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초인의 이미지였다. 날아오는 총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존재 앞에서 백인 경찰관 윌슨은 영락없는 ‘약자’였고 그가 한 모든 행동은 ‘정당방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윌슨이 키 195㎝, 몸무게 95㎏ 체구에 훈련된 경찰로서 총을 갖고 있었고, 브라운은 총이 없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두 사람이 승강이를 벌인 과정에 대해 사람마다 증언이 엇갈리지만 그런 상황에서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는 자명하다. 


하지만 이 ‘전도된 권력관계’ 논리가, 적어도 검사와 대배심 배심원들로 대표되는 일부 백인들 사이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졌고 그것이 곧 법률적 판단을 결정한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 흑인들이 이번 사건에 예외없이 반발하는 데는 불공정한 법집행 및 사법 체계가 있지만, 그 근저에는 자신들이 ‘위협적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좌절감이 있다.


2012년 흑인 트레이본 마틴(17)을 사살한 자경단원 조지 짐머먼의 2급살인 혐의 재판에서도 최대 쟁점은 피고인 짐머먼의 유·무죄가 아니라 키가 180㎝로 또래에 비해 큰 편인 피해자 마틴을 과연 ‘아이’로 간주할 수 있느냐였다. 


심지어 며칠 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12세 타미르 라이스의 경우도 비슷했다. BB탄 총을 갖고 놀던 라이스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와 조우한 지 2초만에 총을 발사했다. 경찰은 그것이 가짜 총인지 몰랐고, 라이스가 나이에 비해 키가 커서 아이인 줄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프랑스 법무장관 크리스티안 토비라가 트위터에 올린 “마이클 브라운은 몇 살이었나? 18세. 트레이본 마틴은 몇 살이었나? 17세. 타미르 라이스는 몇 살이었나? 12세. 그 다음은 몇 살이 될까? 12개월 아기? ‘자라나기 전에 죽여버려라’-밥 말리”라는 글이 흑인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흑인들은 경찰 총격에 사망한 뒤에도 자신이 위협적 존재가 아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비록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나왔지만 미국의 인종주의는 19세기 남부의 백인들이 흑인 노예들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의문이다. 흑인 책임론이 흑인들 내에서조차 나오기도 하지만 흑·백의 수감율이나 경찰 총격 사망률 차이, 각종 사회·경제적 통계 차이, 지리적 분리 거주 현실 등을 보면 구조적 요인을 부인하기 어렵다.


얼마 전 알자지라 방송의 소셜네트워크사이트인 더스트림에 한국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영어강사 자리를 거부당한 미국인의 사례가 올라와 한국의 인종주의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션 존스라는 이름의 이 미국인은 직업소개업체로부터 “학원이 원하는 것은 백인이라고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댓글들 중에는 “한국인들도 이상하게 생겼으면서…”라는 인신공격성 반발이 있는가 하면 “삼성 갤럭시 불매” 글도 있었다. 


미국은 인종주의적 발언을 하면 비난 받거나 처벌 받지만, 한국은 아직 인종주의에 대한 감수성 자체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구직을 거부당한 흑인 교사가 직업소개업체의 통보에 보인 반응은 “그래도 괜찮은가”(흑인이어서 어렵다는 이유를 대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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