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의혹'을 '문건 유출'로 프레임 전환하는 보수언론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불거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이며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동안 언론에서 이 사건을 두고 주로 사용한 표현인 ‘정윤회 국정개입’이나 ‘비선실세 개입’ 대신 ‘문건 외부 유출’과 ‘공직기강 문란’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사실 ‘문건 유출’이란 표현은 이미 조선일보가 지난달 29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라면박스 2개 靑문건 통째로 샜다’는 기사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박 모 경정에 대한 기사를 후속으로 계속 내보내고 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역시 전반적인 기사의 초점을 ‘문건 유출’에 맞추고 있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보수언론들은 왜 이렇게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추려고 애쓰는 걸까? 이럴 때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 걸까? 


우선 ‘유출’이란 말 자체가 부정적 언어이기 때문에 문건을 유출한 누군가가 ‘가해자’가 된다. 그리고 문건 유출을 ‘당한’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피해자’가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문건이 유출되는 이러한 ‘범죄 행위’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정윤회’ 역시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피해자가 된다. 물론 정윤회가 좀 더 신중하지 못했다며 짐짓 훈계를 하는 기사가 등장하겠지만 어쨌거나 정윤회는 ‘국정을 농단한 나쁜 사람’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모함을 당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이해와 동정의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결론은 문건 유출자를 찾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그 사이 ‘정윤회’라는 이름은 서서히 기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고 대신 문건 유출자가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즈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아랫사람들을 잘 간수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잘 챙기겠다는 말을 할 것이고, 그 이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이들을 대거 경질할 수 있는 명분을 획득할 수 있다. 


누군가는 ‘에이 설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사건 초기에 이러한 ‘프레임 전환’시도를 보며 ‘에이 설마…’라고 했었고,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완벽하게 전환된 프레임을 보며 기가 찼던 기억이 수없이 많다. 언뜻 생각나는 몇 개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노무현 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했다며 맹공을 퍼붓던 보수언론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정상회담 문건 유출사건’으로 프레임을 전환했다. 


2.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이 불거지자 가장 먼저 내 놓은 프레임이 ‘대선 불복’ 프레임이었다. 


3. 세월호 참사를 국가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아닌 ‘유병언’을 내세워 특정 개인의 잘못으로 프레임 전환했다. 


4. 세월호 유족들을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아닌 무리하게 보상금을 요구하는 이들로 프레임 전환했다.


현재 진보언론들은 ‘국정 개입’이나 ‘국정 농단’과 같은 프레임을 주로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가 ‘국정’이 되는 셈인데 사람들은 ‘국정’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보다는 ‘정윤회, 청와대 배후 조종 의혹’ 내지는 ‘정윤회, 청와대 업무 개입 의혹’처럼 가해·피해 및 맥락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표현이 낫다. 그럴 때 청와대가 명백한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해자인 청와대 및 박근혜 대통령이 가해자인 정윤회에게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의 ‘국정 개입’에 단호하게 대처할 명분을 얻게 되어 결과적으로 국정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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