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

[글로벌 리포트 | 중동]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

이스라엘 대학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전공 교수가 학생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이스라엘의 이미지는 어떤가?” 학생은 솔직하게 답했다. “창조 경제의 모델 국가로 떠올랐지만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치르면서 이미지가 조금 안 좋아진 것 같다.” 돌아온 교수의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팔레스타인 편을 드는 것은 아닌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부의 시선에 상당히 민감해 한다. 대화를 하다보면 “그런데 당신은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여지없이 들어온다. 주위 아랍국과 오랫동안 적대 관계로 살아와서 그런지 상대가 아군이냐 적군이냐 늘상 편을 가르는 데에도 익숙하다. 이런 이스라엘에 요즘 시련의 계절이 찾아왔다. 


유럽연합(EU) 국가 중 처음으로 스웨덴 정부가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했다. 영국·아일랜드·스페인 의회에서도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차례로 통과시켰다. 프랑스도 결의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 이스라엘과 특수 관계인 미국이 항상 거부권을 행사하는 유엔(UN)에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개별 국가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이미 전세계 130개국 이상에서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연일 비난 성명을 내기 바쁘다. “중동 문제는 이케아(스웨덴의 글로벌 가구업체)의 조립식 가구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스웨덴은 알아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공식 논평에서 짜증이 묻어난다. 여기에는 이슬람국가(IS)나 알 카에다 같은 테러 단체의 근거지인 중동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유지하며 대(對)테러 전선의 선봉에 서있는 이스라엘을 세계가 몰라준다는 섭섭함이 담겨 있다.


실제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타이틀은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이스라엘 언론에는 성폭행 당한 여성을 ‘명예 살인’하거나 여성은 운전도 할 수 없게 하는 사우디·이란 같은 이슬람 국가들의 뉴스가 큼지막하게 보도된다. 그럴 때마다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타이틀은 “역시 이스라엘은 주변 중동 국가와는 다르다”는 자부심과 함께 빛을 발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어떨까. 지난 18일 팔레스타인 청년 2명이 권총과 도끼로 무장한 채 예루살렘의 유대교 예배당에서 랍비 4명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청년 2명은 현장에서 사살됐다. 이날 테러의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와 예루살렘 성지(聖地) 문제가 얽혀있었지만 결국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양측간 무수히 반복돼 온 또 다른 증오의 역사일 뿐이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한정된 지면에서 논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이후에 전개된 양상은 다르다. 이스라엘 정부는 관련 대책으로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시민들의 총기 소유 허가를 완화했다. 전직 경찰과 군인은 물론 일반 시민 중에서도 일정 자격만 갖추면 그전보다 훨씬 쉽게 총기 허가를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정당 방어 차원일 수도 있겠지만 유사 상황에서 공권력이 아닌 개인에 의한 법 집행을 장려하는 것으로도 비쳤다. 


더욱이 네타냐후 총리는 범행을 저지른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집을 부수라고 명령했다. 이는 누가 봐도 일종의 보복이었다. 그날밤 이스라엘 군인들은 섬광탄과 고무총을 쏘며 숨진 청년들의 남은 가족까지 체포했다. 추가 테러를 막겠다는 명분인데, 이러한 연좌제적 징벌이 허용되는 민주주의 국가가 지구상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숨진 청년들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Hamas)가 증오스러웠겠지만 남은 가족을 체포하고 집을 부수는 감정적 대응은 ‘피의 악순환’을 부르는 악수(惡手)일 뿐이다. 물론 이스라엘 시민들은 이를 탁상공론이라며 비웃을지 모른다. 진흙탕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들도 어쩔 수 없이 진흙을 뒤집어써야 한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진흙을 뒤집어쓰기로 했다면 더 이상 우아하게 보이려는 것은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며 “우리는 다르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제3자 눈에는 어차피 한 데 엉킨 진흙 덩어리로 보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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