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급급…시사·교양 죽이기

공영방송 역행하는 MBC (3)사라지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PD들 비제작부서 내치고 불만제로 등 교양 폐지
제작 자율성 거듭 침해…일선PD들 자기검열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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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끝나지 않은 2000일의 비극’이란 제목으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2000일 싸움을 조명했다. 방송 이후 호평과 함께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과거 MBC라면 특별할 것 없는 보도였지만 쌍용차 사태를 지금의 MBC에서 보도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인 ‘PD수첩’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던 ‘불만제로’는 하루아침에 폐지됐다. 권력에 날선 비판은커녕 ‘교양 없는’ MBC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이유다. 


MBC는 지난달 27일 교양제작국을 폐지했다. 다큐프로그램은 편성제작본부 산하 콘텐츠제작국으로, 교양프로그램은 예능본부 산하 예능1국 제작 4부로 이관됐다. 회사는 시청 트렌드를 반영해 예능과 교양을 결합했다고 밝혔지만 교양 부문을 축소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어진 가을 개편에서는 ‘불만제로’와 ‘원더풀 금요일’ 등 교양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특히 8년간 장수해온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불만제로는 폐지 3일 전 갑작스럽게 통보됐다. 회사는 토요일에 방송되는 ‘경제매거진M’을 확대 편성해 소비자 고발 기능을 담당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체 역할에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다.


▲MBC가 지난달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등을 제작하던 교양제작국을 해체한 데 이어 가을 개편 편성에서 ‘불만제로’, ‘원더풀 금요일’ 등 교양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뉴시스)

교양제작국 폐지로 교양 PD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비제작부서로 전출되며 제작여건은 어려워졌다. 지난달 인사발령에서는 전체 다큐멘터리 제작인력의 40% 가량인 7명이 다른 부서로 전출됐다. 몇몇 PD는 내년 3·1절 특집 등 방송예정인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발령이 나기도 했다. 결국 다큐멘터리 제작 인력이 축소되며 제작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사프로그램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PD수첩’과 ‘시사매거진2580’의 날카로움은 예전만큼 찾아볼 수 없고, 경영진은 시시각각 ‘PD수첩’ 손보기를 노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권력을 겨냥하는 이슈를 다루는 횟수는 줄어들고, 대중적인 이슈에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선 기자, PD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제작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하면서 한계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MBC 한 PD는 “잘못된 권위주의에 대한 고발을 해오던 시사 프로그램들이 이명박 정부 이후 제작 자율성을 거듭 침해당했다”며 “아이템 발제에 발이 묶이면서 제작 전에 지치고 반복 학습을 통해 자기검열이 생기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2010년 김재철 사장 체제 이후 수난 시대였다. ‘검사와 스폰서’로 반향을 일으키며 2010년 화제의 중심에 섰던 PD수첩은 몇 달 후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을 두고 경영진의 일방적인 방송 보류로 파문을 빚었다. 또 같은 해 가을 개편에서는 호평을 받았던 ‘후플러스’와 ‘김혜수의 W’ 등이 소리 소문 없이 폐지되고 오락프로그램이 편성됐다. ‘성역 없는’ 비판을 가능케 했던 ‘국장책임제’도 2011년 ‘본부장책임제’로 교체되며 자율성이 제한됐다.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파업 도중에는 시사교양국과 보도제작국을 해체시켰다.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하고 보도국 산하 보도제작국을 시사제작국으로 통합시키자 기자들과 PD들은 “시사고발 프로그램 죽이기”라며 반발했다.


회사는 시사교양 조직 축소와 프로그램 폐지 등 개편 때마다 수익성 문제와 프로그램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다. 제작비 투입 대비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이유에서다. 효율성을 강조하며 시청자 추세를 고려했다는 입장이지만 상업적 이익만을 우선시하며 공공성을 ‘포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MBC 한 기자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시청률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당장의 돈벌이만 바라본 협소한 시각”이라며 “MBC의 공영성을 지켜온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제 자리를 잃으며 건전한 비판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MBC의 신뢰도와 이미지도 함께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이야말로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의 위기’라는 진단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MBC가 정치적인 독립성과 언론자유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서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결국 시청률이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며 “그 해결책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폐지한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영방송으로서 시민을 대변하고 정부 등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적극 고민해야 하는데 상업적 이익만을 위한 편성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공영방송으로서 방송의 책무를 방기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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