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예의조차 없는 MBC 경영진"

해직 1000일 맞는 이용마 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보도·시사 버리고 상업방송화, 버티는 후배들에 미안한 마음
기자는 양심 먹고 사는 사람들…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


▲이용마 MBC 해직기자

오랜만에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상을 받았다. 밥숟갈을 막 들려고 할 때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재심결과, 해고 확정.’ 홀로 사시는 어머니한테 어렵게 ‘해고’라는 말을 꺼냈다. 어머니의 한마디는 이랬다. “나는 우리 아들을 믿는다.” 아랫입술을 앙다물었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2012년 3월20일의 저녁밥상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29일로 해고 1000일을 맞는다.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보도 사수’를 내걸고 그해 1월부터 170일 파업을 벌이던 와중에 해고됐다. 지난 7월 법원이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지만 회사는 그를 포함해 해직 언론인 6명을 인사발령이나 업무지시도 내리지 않고 일산드림센터 ‘201호’로 보냈다. 집기라고 해봐야 책상과 의자, 얼마 전에 개통된 전화, 데스크톱 컴퓨터 2대가 전부인 사무실이다. 


“해고 1000일? 실감이 없다. 1000일이 더 지나면 복직될까. YTN 해직사태만 해도 6년이 넘지 않았나. 앞으로 1000일이 더 지나면 내 나이도 50이 넘는다. 돌아가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손에서 일 떼고 지냈는데….”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복직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항소심이 끝나고 대법 판결까지 3년만 어림잡아도 2018년이다. 기다려야겠지만 대법원 판결에 목매지 않겠다고 했다. 전신에 몰아치는 무력감을 떨쳐내고 ‘바쁘게 지내자’는 모토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는 그를 22일 서울대 미술관에서 만났다. 


-항소심 준비는?
“항소심 판결이 내년 2~3월쯤 나올 것 같다.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최근 대법원의 보수적 판결 분위기랑 무관하지 않아서다.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1심처럼 원사이드하게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회사에서 부당한 짓을 많이 했고 일반 상식을 가진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충분히 평가하지 않을까 싶다.”


-해고 직후 무력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던데.
“할 일이 없고, 갈 곳도 없어 집에서 종일 빈둥거렸다. 1~2주 지내니 어느 순간부터 멍해지더라. ‘이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무 쓸모가 없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러다가는 폐인이 될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대학 도서관으로 갔다. 수료하고 10년째 쓰지 못한 박사 논문을 쓰면서 고비를 넘겼다.”
그는 일산드림센터 201호로 출근하면서 틈틈이 서울대와 건국대 등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고 있다. 


-MBC가 망가졌다는 얘기가 많다.
“MBC 경영진들은 한마디로 무도(無道)한 사람들이다. 인간적 예의가 없고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구성원을 적군 아니면 아군으로 편을 갈라 대하고 있다. 파업 참가자는 적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군이다. 아군에는 특혜를 왕창 퍼주고, 적군이라 생각되면 하던 일도 빼앗아 한직으로 혹은 본인 직종과 무관한 데로 쫓아내고 있다.”


-MBC의 최근 모습을 보면 공영방송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경영진이 MBC를 상업방송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수준미달의 천박한 상업방송이다. 보도나 시사교양은 시늉만 내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으로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유능한 기자와 PD들을 무지막지하게 내칠 수 있겠나.” 


-취재 현장에 복귀하고 싶을 것 같은데.
“기자는 취재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언론환경에서 밖에 있는 게 속 편하다. MBC 돌아가는 행태를 봐라. 얼마나 견디기 힘들면 다들 떠나려고만 할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있는 것 아닌가. 억지로 다닌다. MBC 사람들 중에서 정신과 치료 받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미안할 뿐이다.”


-YTN 기자들이 27일 해고무효소송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기대를 가졌다가 무너지면 가슴이 아프기 때문에 담담하게 기다리라 말하고 싶다.”


2012년 파업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기자나 언론인들은 모두 양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 양심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을까. 또 그 상황에 부닥치면 파업을 선택할 것이다.” 업무방해 등 4가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그는 25일 오후 서울고법에 출두했다. 2년 8개월 전에 멈춰버린 기자 이용마의 시계는 언제 다시 움직일까.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