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무상급식과 한 살 무상보육

[언론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9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무상급식은 (대통령) 공약이 아니라 지자체 재량으로 하는 것”이라며 “누리과정(무상보육)은 무상급식과 달리 (중략) 공약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고 한 경향신문 10일자 1면 사이드톱 기사를 읽다가 혀를 찼다. 정치·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해야 할 청와대 수석‘께서’ 야당이나 무상급식 지지자의 가슴에 맞불을 놓은 저리 세련되지 못한 발언을 하다니 싶었던 탓이다. 또한 안 경제수석의 발언은 무상보육 정책을 고수하라는 일종의 공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인데,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야당과의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12월2일까지 2015년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키야 할 여당은 갑갑하겠다 싶었다.


최근 일부 언론들은 ‘무상복지로 지자체 디폴트(지급 불능)’에 대한 보도로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우려를 증폭하는 여론을 형성했고, ‘무상복지 전면 재조정’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동아일보가 10일자 1면 톱기사로 “눈덩이 ‘무상시리즈’ 5년간 40조원 썼다”고 낸 것도 그 중 하나다. 즉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사실 보편적 복지와 무상급식을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최근 ‘무상복지 전면 재조정’이라는 여론몰이에 다른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 찜찜해했는데, 안 경제수석의 발언은 그 찜찜함의 실체를 확인시켜 준 것 같다. 물론 이에 앞서 11월 초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등이 ‘무상급식 예산 편성 거부’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방재정 파탄이란 명분을 내세웠지 안 경제수석처럼 내놓고 무상급식을 서얼(庶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2010년 무상급식 이래 선별적 복지 지지자들은 ‘이건희 회장의 손자까지 급식을 무상으로 줘야 하느냐’는 논리를 펴왔다. 그런데 누리과정(무상보육)을 두고 ‘이건희 회장의 손자까지 보육을 무상으로 시켜야 하느냐’는 논리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선별적 복지 지지자의 논리의 일관성 차원에서 제기해볼만한 지적이 아닌가. 


무상급식은 ‘오세훈 서울시장 낙마 파동’을 거치면서 자리 잡은 정책이라는 점을 언론은 간과하면 곤란하다. 5년 동안 국민적 지지 속에 성장하던 무상급식을 ‘무상복지 폐해’라며 흔들면 1년 된 무상보육보다 훨씬 큰 이미지 훼손이 발생한다. 언론들은 이 같은 사실에 거의 주목하지 않고 여야 갈등으로만 부각시켜 아쉽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한국 아동의 ‘삶 만족도’를 보면, 단군 이래 최대로 잘산다는 대한민국에서 빈곤가구 아동의 42%가 형편이 어려워 밥을 굶고 있고 특히 한부모 가구와 조손 가구의 결핍률은 75.9%로 심각하다. 


그러니 복지 예산의 압박을 논하면서 대통령의 무상복지는 되고, 야당의 무상복지는 안된다는 편가르기식 정책 집행으로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위협에 직면한 대한민국 복지와 교육의 백년대계를 세우기 어렵다. 낳기만 하면 정부가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약속은 0세부터 5세까지만 해당된단 말인가?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의무교육이라면 모름지기 급식도 포함되는 것이 이른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제도’가 아닐까. 


2012년 12월16일 밤에 진행된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3차 TV토론회’가 생각난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반값등록금을 이명박 정부 때 실시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박 후보는 “제가 잘못됐다고 했죠. 제가 대통령이 됐으면 진작 했다. 제가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할 것이다”라고 ‘신뢰의 정치인’답게 인상적인 답변을 했다. 반값 등록금은 지금 어찌 되었나. 며칠 전 2012년 7월10일 직접 발표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문’ 전문도 꼼꼼히 읽었다. 선언문에는 주옥같은 정책이 가득했다. 오는 12월18일 당선 2주년을 기념해 언론들이 ‘공약 집행률’이 얼마인지 확인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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