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실 확인·깊이 있는 보도 추구해야"

40년차 저널리스트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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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노장은 죽지 않는다.’ 올해 40년차 저널리스트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1974년 만21세의 나이로 한국일보에 입사해 줄곧 한길을 걸어온 언론인. 지난 2012년 말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그는 여전히 날카로운 펜촉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를 e-book으로 출간했다. 지난 1년여 간 한국일보에 연재한 칼럼을 바탕으로 1개월차 인턴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세월호 사고를 기점으로 공공연하게 ‘기레기’라 불리는 기자들.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기자와 언론’에 대한 40년차 선배기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지난 8월에는 칼럼집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했다.


수많은 매체가 쏟아지며 치열한 속보경쟁 속에 사실 확인은 미약해졌다. 부족한 시간과 늘어난 업무에 데스크 기능도 약해지며 ‘게이트키핑’이 무뎌졌다. “현장에서 선배들로부터 ‘기자는 120을 취재해서 80만 쓰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기자들이 80만 취재해서 120을 쓰는 것 같아요. 취재가 부족하면 오보가 나죠. 선배들이 후배들의 등뼈를 심어주고 자꾸 자세를 교정해줘야 하죠.” 임 고문이 신속성보다 ‘정확성’에 방점을 찍는 까닭이다. “다소 느릴 수 있지만 정확하고 깊은 보도가 중요하다”는 그는 “결국 방향이 달라져야 하는데 사장과 편집국장의 생각이 바뀌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눈이 밝아야’ 함도 있다. 다양한 전문가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사실을 전하는 만큼 ‘정직한 전문가’를 가려내야 한다. “진짜 전문가인지 아닌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개인 목적이나 상업적인 악용을 감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올바른 사용도 주문했다. 기사에서 잘못 쓰인 어휘를 볼 때면 그는 마음이 불편하다. “‘유명세를 탄다’의 ‘유명세’는 유명해져서 당하는 불편이나 피해를 말하는데 유명한 기세의 의미로 잘못 쓰고 있죠. ‘장본인’은 부정적인 일을 저지른 사람, ‘재원’은 재주가 뛰어난 여자를 가리키는데 무분별하게 쓰고 있어요. 제대로 훈련이 안 된 채 말의 정확한 뜻도 모르고 쓰는 걸 보면 안타깝죠.”


기사의 완성은 ‘편집’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수습기자 직후 7년간 편집기자로 일하며 터득한 바다. 기자들이 편집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리 좋은 기사라도 제목에서 눈길을 끌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것. “취재는 ‘질문’이고 편집은 ‘해석’이에요. 좋은 기사를 쓰려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하고, 기사를 잘 해석한 제목과 편집이 나와야 비로소 최종 완성되죠.”


하지만 40년 전엔 그도 수습기자였다. 1974년 초여름, 사건기자 회식 후 통금시간에 막혀 하숙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바닥에서 엉엉 목 놓아 운적도 있다. 긴급조치시대를 사는 기자의 무력감과 짓밟힌 진실, 사회 초년생의 부적응이 뒤엉켰을 터다. 1981년 사회부 시절엔 한 심장병 어린이의 사연 보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심장병 환자 사망률이 높았던 당시 전국에서 성금이 모아졌고 아이는 살아났다. 지금도 연락을 하지만, 8년차였던 그가 40년차가 됐듯 11살이었던 아이는 어느새 44살이 됐다.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 논설위원, 주필 등 기자로서 할 수 있는 웬만한 자리를 거친 임 고문에게 후배기자는 “천수(天壽)를 누렸다”고 농을 한다. 하지만 그의 언론 인생은 끝이 아니다. 퇴직 후 서예와 연극을 즐기며, 지난해 ‘한국언론문화포럼’을 창립했고 한국일보에 격주 기명칼럼을 연재하며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도 하고 있다. 최근 이투데이에도 적을 뒀다. 지금도 현직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임 고문. 그가 늘 되뇌는 ‘화이부동(和而不同)’ ‘문질빈빈(文質彬彬)’처럼 ‘조화하되 뜻(義)을 굽히지 않고’ ‘겉과 속이 똑같은’ 언론인으로서 제2막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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