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진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장편소설 '화월' 펴낸 박기묵 CBS 스마트뉴스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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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묵 CBS 스마트뉴스팀 기자

화월(火月).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있던 1991년 5월은 말 그대로 ‘불의 달’이었다.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자 이에 항의해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등 학생 10여명이 제 몸에 불을 붙였다. 이어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분신하자 검찰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씌워 전민련 동료 강기훈씨를 기소하기에 이른다.


“너무나 명백하고 억울한 일인데,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하더군요. 대중에게 화두를 던지는 것은 꼭 기사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기묵 CBS 스마트뉴스팀 기자는 지난 2011년 유서대필 사건을 기획 취재해 한 달간 노컷뉴스 V파일 ‘대필 공방 20년, 유서는 말한다’라는 4부작 심층보도물을 내놓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큰 이슈를 몰고 오진 못했다. 그때 박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영화 ‘도가니’의 개봉. 박 기자는 한 편의 영화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도가니법’ 제정에 이르는 것을 보고 유서대필 사건을 토대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문학에 관심이 있던 것도, 소설을 써본 적도 없었지만 이 사건의 실체와 진실을 알리려는 목표였다. 사건 당사자와 관련 인물을 인터뷰하고 공판·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입수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가 앉은키만큼 쌓였고, 박 기자는 퇴근 후 밤 12시부터 3시간은 무조건 작품에 할애했다. ‘2년차 막내기자가 일 안하고 소설 쓴다’는 눈초리를 받을까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였다.


1년 만에 작품을 완성했지만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출판사 찾기에 난항을 겪었다. 좌절한 박 기자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것은 보도국 선배들이었다. 선배들은 5만원, 10만원씩 십시일반으로 박 기자를 도왔고, 결국 그의 첫 작품 ‘화월’은 자가 출판을 통해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책 판매에 따른 수익금은 모두 강씨에게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복역한 강씨는 사건 23년 만인 지난 2월, 재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고 현재 간암으로 투병 중인 강씨는 기약 없는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소설을 통해 고발하고 싶은 것은 유서대필 사건의 정확한 전후 상황, 그리고 당시 검찰의 비정상적인 조사 방식이다. 온갖 회유책과 끼워 맞추기 식 수사, 그리고 이러한 공로를 바탕으로 ‘권력의 시녀’가 된 검찰. 더욱 좌절스러운 것은 20여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기자는 “법은 공정하긴 하나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며 “공정하다는 것도 주관적인 의미”라고 했다.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잘못된 필적자료로 범인이 된 유서대필 사건에서 얻은 결론이다. 남은 과제는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공정한 전달자가 되고 싶다”며 “젊은 세대가 유서대필 사건을 깊이 이해하고, 지금도 이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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