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자회사 사장 인사에 '권력의 그림자'

본사 퇴직임원 자리보전 전락
능력보다 사장 측근 보은인사
정치권 인사청탁 통로 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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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관피아’ 개혁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공공재 성격을 띠는 방송사 자회사 사장 인사 역시 측근들의 ‘보은인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성이나 업무 능력보다 본사 임원 출신의 정년 보장을 위한 목적이나 친소관계, 외압에 의한 자리 챙겨주기 용도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YTN은 지난 2일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 후임 YTN플러스 대표이사 사장에 류희림 전 사이언스TV본부장을 임명했다. 류희림 YTN플러스 사장은 구본홍, 배석규 사장 체제의 핵심 인사로 2012년 YTN 노조가 윤두현 당시 보도국장 등과 함께 ‘YTN 5적’으로 꼽았던 인물 중 하나다. 류 사장에겐 YTN 노사 관계를 악화시킨 책임자라는 비판이 따라붙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점 등이 높이 평가받아 자회사 사장으로 ‘영전’한 것이다. YTN 관계자는 “자회사 사장이란 자리가 사실 별로 할 일도 없고 땅 짚고 헤엄치기인 셈이니 본사 사장 입장에선 자기 마음에 드는 인물을 꽂아주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줄줄이 이뤄진 KBS의 자회사 사장단 인사 역시 ‘측근 챙겨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능력과 원칙을 무시한 정실·보은인사”라고 비판했고 KBS노동조합도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자리에 능력과 무관하게 자기 사람만 갖다 내리꽂고 있으니 회사의 미래가 걱정”이라고 꼬집었다.


조대현 사장은 길환영 전 사장 체제에 동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인사들을 계열사 임원으로 대거 중용했다. 지난달 4일 임명된 KBS비즈니스와 KBS아트비전 사장, 감사, 이사 등 6명 중 4명이 길환영 전 사장 밑에서 본부장을 지낸 인사들이었다. 지난 5월 길환영 사장의 보도 외압 파문 속에 정년을 3년 남겨두고 자진 사퇴한 임창건 전 보도본부장도 지난 9월 KBS아트비전 감사로 임명되며 현직에 복귀했다. 본사에서 사표를 낸 뒤 임원을 지냈던 이들이 퇴임 후 계열사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정년을 채우는 통로로 이용되는 셈이다. KBS 계열사 한 관계자는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본사 임원 인사에서 측근을 챙기다가 밀려난 사람들을 보낸다거나 정년을 보장해주는 차원으로 계열사 임원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니 계열사 임원이 기형적으로 늘어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계열사 임원 인사가 본사 사장에 의해 사실상 좌우되는 구조이다 보니 인사 청탁 논란으로 인한 잡음도 빈발하다. 이번에도 고대영 KBS비즈니스 사장 임명을 두고 뒷말이 나왔다. 조대현 사장이 KBS 사장 후보로 경합했던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을 계열사 사장으로 임명한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고대영 KBS비즈니스 사장은 지난 2012년 KBS 사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에도 부사장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KBS 한 관계자는 “고대영 사장은 권력 주변과 KBS 상층부에서 계속 자리를 유지하며 권력의 신뢰를 받고 있고, 조대현 사장은 그런 외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박영문 신임 KBS미디어 사장도 대구경북의 유력 정치인들과 막강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인사 과정에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KBS 관계자는 “조대현 사장 입장에선 고대영, 박영문 사장을 ‘보험’ 차원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계열사 임원 인사가 본사 임원 출신 챙겨주기로 변질되면서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내부 인사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내부에선 사실상 체념한 분위기다. 근본적으로 자회사 사장 및 임원 인사권을 본사 사장이 쥐고 있는 한 ‘낙하산’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차라리 본사와 네트워크를 가진 힘 있는 사람이 오는 게 낫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도 하다. KBS 계열사 한 관계자는 “결국 KBS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하고 수익을 내는 회사이기 때문에 KBS 본사와의 관계가 중요하고, 이 때문에 자사 직원 출신이 사장을 해야 한다고 마냥 주장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면서 “본사 낙하산 인사의 근본적인 문제를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사장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 경영의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는 문제 역시 해결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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