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 말씀은 그만, 실천으로 보여줄 것"

박래용 경향신문 신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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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경향신문 편집국장

“오늘이 국장 4일차. 벌써 체력이 올인된 기분이다.”


지난달 30일, 박래용 국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한 줄 단상이다. 나흘 전 편집국장에 취임한 그는 인터뷰 요청차 건 전화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다”고 호소했다. 괜한 엄살이 아니었다. 편집국장에 지명된 후 “모든 일은 1할이 기획이고 9할이 실천”이라며 “중요한 것은 실행”이라고 강조했던 그는 국장에 취임하자마자 지체 없이 머릿속 구상들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 1일, 한바탕 전쟁과도 같은 회의를 마치고 채 숨도 돌리지 못한 그를 서울 정동 경향신문 6층 편집국장실에서 만났다.


박래용 국장은 취임 일성으로 “편집국 누대에 걸쳐 쌓인 비효율적인 관행 같은 덕지덕지 붙은 거미줄을 걷어내겠다”고 밝혔다. 그 중 하나로 비효율적인 회의 시간과 진행 방식을 조정하고, 단점으로 지적되던 답답한 편집에도 변화를 줬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미래 비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에디터 시절, 기자라는 직업과 경향신문의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후배들을 지켜보며 그들에게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향신문의 미래를 준비하는 위원회’ 약칭 ‘미래위원회’를 만들어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산하에 지면 분과와 온라인 분과를 두고 ‘최정예’ 기자들을 투입했다. 단순히 뉴욕타임스가 주목받는다는 식의 강 건너 얘기가 아니라, 경향이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 단기‧중기‧장기 플랜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실행 시점은 늦어도 이번 달을 넘기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공자님 말씀은 다 나와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미래위에서 만드는 리포트는 로드맵 더하기 액션플랜이 될 것이다. 확정되면 바로 실행할 것이다.”


2010년 신설된 디지털뉴스국 초대 편집장을 지낸 그는 온라인에 대한 감각이 상당히 깨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의 ‘O’자도 몰라 PV(페이지뷰)를 경찰서 용어인 PB(폴리스박스‧파출소)로 알아들을 정도로 무지했던 그는 다짜고짜 사람과 책을 붙들고 공부를 했다. 그렇게 ‘신세계’에 눈뜬 그는 종합지 최초의 온오프 종합 뉴스사령부를 넘어 그가 ‘멋진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는 온오프 통합 저널리즘의 완성을 꿈꾸고 있다.


“가디언과 뉴욕타임스 등을 즐겨찾기 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어가 본다.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을 정도다. 마냥 해를 바라보듯 눈이 부시다고만 할 게 아니라 뭐든 따라서 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시간표를 만들고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아 있다.”


그는 무게 중심을 지면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회의 방식부터 손질했다. 디지털뉴스 편집장을 자신과 같은 책상에 앉게 하고 사실상 “양 국장 체제로 간다”고 선언했다. 순서도 디지털뉴스 편집장이 가장 먼저 전날 온라인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오전 회의 시간에도 각 부장들에게 온라인 보고부터 하도록 했다. 전날 각 부서에서 온라인 기사 몇 건을 출고했고, 가장 PV가 많이 나오거나 반응이 좋은 기사는 어느 것이었는지 보고하는 식이다. 박 국장은 “외형적인 것이지만 구성원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작은 변화와 실천들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A라는 기자가 조그만 기사를 하나 발굴해서 썼는데 온라인에 보내보니 난리가 났다. 그렇게 맛을 보면서 눈을 떠가는 거다. 이미 한참 앞에 나가는 기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다중도 있는 만큼 중간에 있는 그룹들을 함께 견인해 가는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옛 자유당 정권 시절, 경향신문 취재차량이 명동거리에 나타나면 시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뒤따랐다. 박래용 국장도 말로만 들은, ‘그때 그 시절’ 이야기다. 하지만 과거에 1등을 했던 경험이 경향신문 구성원들의 DNA 속에 남아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수십 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1등의 경험을 다시 맛보게 해주는 것이 그의 욕심이자 바람이다.


“조그만 지면이나 기사 하나에서 성과를 내서 이겼을 때의 단맛을 느껴보게 하고 싶다. 종합점수로 1등이 되려면 국영수만 잘 해선 안 된다. 모든 과목에서 골고루 고득점을 내야 한다. 종합성적 1등은 당장 갈 수 없다 쳐도, 각 부서별로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에서 1등을 하는 선수들이 여러 명 나오고, 계속 그 수가 늘어나는 편집국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날을 향해서 수레를 밀어 1미터라도 순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내 욕심이다.”


박래용 국장은?


전남대 불문과 80학번으로 1990년 1월 경향신문 공채 29기로 입사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월남 참전 용사들의 고엽제 후유증에 대한 단독 기사를 써 국가의 보상 및 지원을 이끌어내는 개가를 올렸고, 연쇄살인범 지존파 단독 인터뷰 등으로 ‘이달의 기자상’ 등 특종상을 20여 차례나 받았다. 뛰어난 취재력과 추진력을 무기로 시경캡, 법조반장, 여당 반장, 청와대 출입기자부터 정치부장, 사회부장, 정치에디터까지 편집국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2010년 경향닷컴의 편집국 통합으로 신설된 디지털뉴스국 초대 편집장을 지내며 블로그에 ‘편집장의 눈’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공익제보 사이트 경향리크스를 만들며 주목을 받았다. 편집국장에 지명되기 전까지 기명으로 쓰던 칼럼에서 특유의 촌철살인 문체로 일부 팬층(?)을 거느리기도 했다. 스스로 “샤이(shy)한 편”이라고 했지만, 농담도 좋아한다. 개인 페이스북은 “장난치는 목적”으로 사용할 정도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농담 속에 뼈가 있어 그를 어려워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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