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와 아사히신문 때리기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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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최근의 일본 언론을 살펴보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보수우익 미디어의 아사히신문 때리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8월5일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요시다 세이지씨의 증언이 거짓으로 판명됐다며 이를 보도한 해당 기사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보수 미디어의 비판은 건전한 상호비판의 정도를 넘어서 사실과 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신문은 아사히신문의 오보가 위안부 강제연행 문제의 주요 근거가 되었기 때문에 아사히신문이 기사를 철회한 이상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 여부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논리를 퍼트리고 있다. 또 아사히신문의 강제연행 보도가 한국의 반일감정에 불을 지폈고 1996년 UN의 위안부 문제 보고서 작성과 주요 선진국의 위안부 문제 결의안 채택에 일조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움직임을 정정해 나가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의 이런 인식은 ‘일본은 위안부를 강제동원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국내외적으로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시바 시게로 자민당 간사장이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국회에서 해당 기사를 검증해야 한다고 아사히신문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최근 이용한 지하철에는 ‘매국노’, ‘매국 DNA’, ‘매국 허위보도’,‘멜트다운’, ‘위선의 십자가’, ‘대죄’, ‘대오보’ 같은 단어들이 붉은색을 배경으로 강조된 주간지의 자극적인 광고 포스터가 승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일부 주간지는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강제연행 보도 취소 이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특집기사를 게재해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잡지가 계속 팔리는데 특집기사를 게재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면서 아사히신문사의 연봉까지 문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사히 때리기는 ‘사죄’, ‘사과’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아사히 텔레비전의 간판 토론프로그램인 ‘아사마데 나마 테레비’가 ‘위안부 문제와 미디어 책임’이라는 테마로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보도를 다뤘다. 프로그램이 시작하자마자 보수 우익 패널들은 “아사히신문의 사죄가 충분하지 않았다”, “계열사인 아사히 텔레비전은 사죄하지 않았다”, “먼저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보수우익 미디어들이 아사히 때리기를 자사의 독자확충 호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타사의 잘못을 장사거리로 삼는 것은 저널리즘의 윤리에도 어긋난다. 산케이 신문은 아사히 때리기 전국캠페인을 노골적으로 벌이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산케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보도 / 아사히는 역사를 외면하지 마라’는 제목의 PR판을 제작해 각 가정에 배포하는가 하면 아사히신문이 요시다 후쿠시마 전 원전 소장의 조서내용 오보와 위안부 강제연행 보도를 철회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9월 11일에는 호외까지 발행했다. 호외는 ‘(아사히)본사 사장 사임을 시사’라는 제목까지 게재, 타사 경영진에 대한 퇴임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이 9월4일자 지면에 자사 보도를 비판한 이카가미 아키라씨의 칼럼을 게재거부했다가 뒤늦게 실은 것에 대해 독자에게 사과하자, ‘사죄할 대상이 잘못된 것 아니냐! 독자가 아니라 일본국민에게 사죄하라’고 아사히신문을 꾸짖었다. 


그러나 정작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산케이신문이 남을 탓할 입장이 못된다. ‘제12회 아시아 연대회의 실행위원회’는 산케이신문에 보낸 정정 요구서에서 타사를 비판하기 이전에 산케이신문부터 잘못을 시인하고 보도를 정정하라며 5개의 정정항목을 제시했다. 정정내용은 지난 5월25일 산케이신문에 실린 ‘역사전쟁 2부 위안부 문제의 원점, 일본만이 악 주도한 연출…아시아 연대회의’ 특집 기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기사는 엉뚱한 사진을 관련사진으로 게재하거나 위안부들이 입지도 않았던 치마저고리를 입었다고 기술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단체나 인물이 참가했다고 말한다. 기획의도에 맞춰서 꾸며낸 내용들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아사히신문에 칼럼 게재를 거부당했던 이카가미 아키라씨는 다른 신문사에서도 게재거부를 당한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건전한 저널리즘은 건전한 사회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일본사회의 자생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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