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전사' 김부선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언론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연예인이 억울한 사람을 위해 싸워야 한다.”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지난 9월26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본관 앞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보도를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했다. 연예인이 공인이라며 엄벌하는 한국의 현실도 한심하다고 생각하는데, 연예인이 정의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니! 경찰, 검찰, 언론, 정치인, 국회의원, 정부는 다 어디서 무엇을 하기에, 생계를 위해 연기 대본 외우기에도 바쁜 연예인을 나가 싸우도록 누가 등 떠밀고 방조했단 말인가. 


 김부선씨가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 옥수동 H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문제제기한 시점은 11년 전이다. 지난해도 그의 타임라인에서 그 지적을 읽은 기억이 있다. ‘12년 전 이사한 첫 달 난방비가 80만원이 나왔다. 앞집은 5인 가구인데 3000원이 나왔다. 그 집주인은 ‘딸집에 왔다갔다 해서 집을 비워서 난방비가 적게 나왔다’는 등 횡설수설 했다’고 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선진화됐다는 한국에서 저렇게 극단적이고 원시적인 비리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하며 설마 했다. 또 11년이나 된 난방비 비리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면 원래 비리가 아니었는데 김씨가 과장해서 설명하는 것 아닌가 하며 대수롭게 여겼다.
 

무엇보다 내 머리 속에서는 그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김씨가 에로영화인 ‘애마부인’ 속편의 섹시한 여주인공이었다는 사실과 불법인 대마초를 허용해야 한다고 용감하게 주장하며, 또 ‘장자연 자살’과 관련한 사회적 발언으로 법적 분쟁을 겪고 있던 터라 그의 주장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식의 판단을 했던 것이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두 차례 이혼한 백수였지만 불굴의 용기로 환경오염을 일으킨 미국 기업에게 최대의 보상금을 받아낸 법률보조원 ‘에린 브로코비치’(2000년)에게 배운 교훈을 잊은 탓이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라.
 

김씨의 호소에 오랫동안 외면하던 언론은, 지난 9월14일 그가 H아파트 반상회에서 입주민과 난방비 문제로 다투다 폭행했다는 ‘김부선 폭행 사건’에는 하이에나처럼 달라붙었다. 가수 방미씨는 김씨를 향해 “억울한 일, (중략)설치면서 드러내고 싶은 것을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다”라고 비난해 사건을 확대했다. ‘김부선 폭행 혐의 사건’으로 ‘난방비 비리 사건’어 덮어지는가 싶었는데, 진실은 가라앉지 않았다. 
 

뒤늦게 성동구가 경찰에 난방비 관련 수사를 의뢰한 덕분이다. 경찰이 지난 201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 말까지 27개월간 해당 아파트의 난방비 1만4472건 중 가구당 난방비가 0원으로 나온 건수가 300건이고, 9만원 이하가 2398건이라고 밝혔다. 김씨의 난방비 비리 제보는 사실이었다. 곪고 있는 살이 드러났으니 제거하고 새살이 돋기를 기다리면 되는데 사람 사는 세상은 ‘옳은 것이 좋은 것’이란 단순한 진리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 비리의 책임을 지고 H아파트의 관리소장은 사퇴를 했으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의 반성없는 저항으로 김씨는 내부 고발자들이 겪은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의 명예가 실추됐다는 항의뿐만 아니라, ‘김부선도 난방비 0였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플랜카드를 붙여놓았다. 제보자를 헐뜯고 도덕적으로 비난해 그의 제보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다. 적폐를 해소하자는 사람을 왕따를 놓는 것이다.
 

‘난방전사’란 별명을 얻은 김부선씨의 용기와 끈질김에 박수를 보낸다. 억울한 사람을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기자들이었다. 김씨의 ‘행동하는 양심’을 보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언론은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바로잡습니다

 

본보 지난해 9월30일자 <'난방전사' 김부선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라는 제목의 기고 중 "김부선씨 폭로 '0원 난방비 비리' 의혹과 관련, '이 비리의 책임을 지고 H아파트의 관리소장은 사퇴'"라는 내용을 포함하였습니다. 그러나 해당 관리소장은 이 비리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이 아니라서 바로잡습니다. 이 내용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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