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기자의 동병상련

[스페셜리스트 | 법조] 남상욱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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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둘 다 심각했다. 한 바탕 말다툼이 있은 뒤 술잔이 깨질 것 같은 건배. 지난달 한 검사와 가진 저녁 겸 술자리는 서로를 험담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그에게 나는 ‘기레기’(기자+쓰레기)였고, 나에게 그는 ‘정권에 휘둘리는, 도덕성마저 바닥인 못 믿을 검찰의 조직원’이었다.


먼저 포화를 날린 건 나였다. 마침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음란행위로 적발돼 검찰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였다. “하다하다 이제 음란 행위냐”는 게 소위 ‘선빵’(선제 공격)의 요지였다. 섣부른 공격은 반격의 빌미. 지난 몇 년 동안의 일들을 끄집어내 ‘연타’를 날렸다.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10억 가까운 뒷돈을 받아 챙긴 뇌물 검사, 사건 당사자와 버젓이 검사실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성추문 검사, 근래 재력가의 장부에 등장한 ‘장부 검사’까지. ‘검사 시리즈’라는 말까지 꺼내가면서 온갖 종류의 추문을 거론하는 내 입은 시원했다.


물론 ‘KO’ 펀치도 준비가 돼 있었다. 지난 정권에서의 PD수첩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미네르바 구속 사건과 같은 ‘무리한 정권 하명 수사 3종 세트’는 기본이었고, 최근에 있었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검거 실패와 사상 초유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도 있었다. 얼마든지 상대를 궁지에 몰 자신이 있었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지금 누가 이런 검찰을 믿겠느냐. 여기 서초동에서 10미터만 벗어나도 아무도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을 신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자코 있지만은 않았다. 쏟아지는 오보들,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낚시 기사들, 보도 경쟁에 휘둘리며 내놓은 무리한 기사들. “요즘 누가 언론을 믿느냐.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대로 돌아왔다. 게다가 그는 40대의 중년답지 않은 인터넷 신조어까지 꺼내들었다. ‘기레기’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언론의 결과물을 놀라울 정도로 꼬집어 내 사례로 드는 ‘정교한 타격의 기술’까지 선보였다. “그런 언론은 믿을 만 한 거냐”라는 반격이었다.


자리는 허무하게도 그렇게 끝이 났다. 열띤 타격전과 달리 ‘훈훈한’ 웃음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서로의 현실이 상대의 입을 통해 드러났지만, 사실은 그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그 역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내가 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그만큼 그도 나도 검찰과 언론 둘 다 최근 일련의 일들로 만신창이가 됐다는 걸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그 자리의 여운은 남아 있다. 그 때 난 “지금 언론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솔직히 문제의 근원이 뭔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하고 있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역시 “지금 검찰이 달라지고 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속으로 꾹 참았을 것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가 터질 때마다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말을 하지만, 속 시원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


게다가 굳이 얘기해봐야 서로의 반응이 똑같았을 것을 둘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뭐가 달라지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생각하면 할수록 씁쓸하기만 했던 동병상련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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