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친구 만들기

[글로벌 리포트 | 중동]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

개인적으로 지난 여름은 생애 가장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40도에 육박하는 이스라엘의 숨막히는 기후 때문만은 아니었다. 7~8월 50일간 치러졌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의 유혈 충돌 취재를 위해 난생 처음 미사일이 쏟아지는 현장을 쫓아다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2000명이 넘는 가자지구 희생자를 낸 뒤 양측은 지난달 26일 휴전했지만 이스라엘의 유일한 한국 특파원으로서 개인 차원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솔직한 기분으로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이스라엘에 와서 기사에 대한 항의를 더 많이 받고 있다. 그동안 알고 지낸 현지 유대인 친구들과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 군 대변인들은 매일 내가 쓴 기사에 대해 항의를 하며 요즘도 기사를 쓰게 된 경위에 대해 줄기차게 설명을 요구해온다. 그들은 이번 교전을 다룬 조선일보 기사의 논조가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이고 이스라엘에 비판적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이들이 어떻게 한글로 된 기사를 읽고 매일매일의 기사 내용에 대해 항의를 해오는지 궁금했다. 경우는 다양했다. 국내 언론의 기사를 모니터링 하는 주한(駐韓) 이스라엘 대사관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도 있었고, 한국 기업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는 유대인들이 현지 한국인 동료에게 기사 내용을 물어보기도 했다. 한류(韓流)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은 직접 한글 기사를 번역하기도 했다.


올초 이스라엘 특파원으로 처음 왔을 때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이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관계자들로부터 전해들은 주의사항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안보에 관련된 팔레스타인 이슈에서 조금이라도 이스라엘에 비판적 주장을 했다가는 그간 애써 쌓아놓은 관계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경고였다. 


실제 교전 50일간 지켜본 유대인들의 단합은 놀라웠다. 10대 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택시기사부터 총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예외 없이 한 목소리를 냈다. “이스라엘은 평화를 원하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 파괴에만 골몰한다.” “이스라엘 군은 정밀한 타격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하마스의 ‘인간방패’ 전략 때문에 민간인 희생자가 불어났다.”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이스라엘의 뛰어난 기술(아이언돔) 때문에 오히려 세계 여론이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가고 있다.”


국익 관련 이슈에서 한 목소리가 되는 이스라엘의 단합심이 무수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익히 알려져 있다. 미국 정계(政界)에 막강한 입김을 행사하는 로비단체 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AIPAC)의 사례는 국내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허우적 대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전후(戰後) 70년이 지나도록 나치 전범(戰犯)을 추적하는 이스라엘의 집요함은 늘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이스라엘의 집요함이 결국은 이스라엘에 독(毒)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안보 이슈에서 비판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유대인들의 집요함 때문에라도 그들의 면전(面前)에서 이스라엘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기란 쉽지 않다. 이스라엘의 진보 일간지 ‘하레츠’의 칼럼니스트는 이스라엘 군에 비판적 칼럼을 썼다가 살해 협박을 받고 개인 경호원을 고용해야 했다.


이러한 착시(錯視) 현상 속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논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스라엘은 북한이나 이란, 러시아와 함께 세계 국가 선호도 조사에서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고 유럽에서는 이스라엘을 ‘네오 나치(Neo Nazi)’로 비난하는 반(反)유대주의 열풍이 거세다. 이마저도 유대인들은 “프랑스나 영국에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린다. 


유대인이었던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성향을 ‘집단적 인지 장애’라고 비판하면서 “1948년 건국 후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미국 이외의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교전을 거치면서 그간 잘지냈던 유대인 친구들과 금기시 됐던 팔레스타인 이슈로 설전(舌戰)을 벌이며 사이가 소원해졌다. 이래저래 유대인 친구 만들기가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박국희 조선일보 이스라엘 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