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제287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1부문 / KBS 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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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윤진 기자

윤 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로 숨진 지 넉 달이 지났다. KBS가 윤 일병의 구체적인 사망 원인을 처음 추적 보도한 지도 한 달이 다 돼 간다. 아직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묻혀 있었던 군 내 가혹행위들이 봇물처럼 병영 밖으로 폭로되고 있다.


군 내 구타 근절대책이 처음 발표된 게 1987년이다. 28년 동안 여러 차례 개선책이 발표됐다. 하지만 윤 일병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얼마 전 동부전선에서 임 모 병장의 총기 난사로 5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되는 게 현실이었다.


보도 이후 파문이 커지자 누군가는 ‘사람을 죽여야 하는 군에서 인권 문제를 강조해선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윤 일병 문제는 ‘인권’의 문제가 아니다. 1200페이지 사건 기록 전체를 살펴본 결과, 윤 일병은 명령을 어기거나 규율을 위반해 맞은 게 아니었다. 그냥 ‘때리고 괴롭혀야 할 존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 어이없는 폭력을 최소 십수 명의 장병이 목격했지만, 그 누구도 상부나 외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사건 발생 직후나 지금이나 진실엔 관심이 없다. 맞다 죽은 병사를 만두 먹다 기도가 막혀 숨졌다고 발표한 행위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직접 사인은 ‘질식사’가 아닌 ‘구타에 의한 쇼크사’라고 법의학 전문가들이 조목조목 분석해 밝혔는데도 군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군 사법체계의 문제점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수사권과 기소권, 재판권이 모두 행정당국의 손에 있다. 조선시대 원님 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사 기록에서 오류가 자꾸 발견되고, 무결해야 할 재판 기록마저 엉망이었다. 핵심 증인이 재판 도중 슬그머니 증인 명단에서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행법상 문제제기를 할 통로가 없다.


취재하는 내내 분노했고 좌절했다. 하지만 아직도 윤 일병의 원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건의 원인을 고민하면 할수록 몇 번의 대책 발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기자 생활이 끝나는 순간까지 안고 가야 할 숙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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