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 한전부지 인수전 언론 보도 유감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겨냥한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인수전을 둘러싸고 언론의 취재경쟁이 뜨겁다. 투자비가 입찰금액과 개발비를 모두 합쳐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초대형사업인데, 재계 1·2위 간 경쟁이라는 흥행요소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흥미위주식 보도가 과연 바람직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금호는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재계 5위권 진입의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남의 돈을 빌려 대우건설을 비싸게 인수하면서, 금호의 안정성까지 훼손했다. 결국 금호는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무리한 기업인수합병으로 위기를 자초한 ‘승자의 저주’의 대표사례가 됐다. 부동산 인수도 기업 인수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한전부지 입찰이 단순히 누가 더 많은 돈을 써내느냐의 ‘머니게임’이 되면, 땅주인인 한전으로서는 반가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인수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금력만 보면 삼성과 현대차는 금호와 비할 바가 아니다. 삼성과 현대차는 3월말 기준으로 당장 동원이 가능한 현금성 자산이 각각 66조원과 42조8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여유자금이 많아도, 투자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국내외 시장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투자 1순위는 연구개발과 기업인수합병,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등 경쟁력 제고 노력이다. 


더욱이 삼성전자의 경우 효자노릇을 해온 휴대폰사업이 애플과 중국업체들 사이에서 고전 중이다. 2분기 영업이익이 8조원을 밑돌아 어닝쇼크를 기록하더니, 3분기에는 아예 6조원선마저 위태롭다는 예상이 나온다. 또 위기돌파에 앞장서온 이건희 회장의 입원이 장기화하면서, ‘리더십 공백사태’마저 우려된다. 현대차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미 2분기 영업이익이 원화강세 여파로 두 자릿수의 감소율을 보였다. 또 디젤차,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 등 친환경·차세대 자동차 개발에서 경쟁사에 뒤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과 현대차 모두 이런 위기상황에서 10조원이 넘는 거액을 땅 사는 데 쏟아붓는 게 과연 타당한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더욱이 한전부지는 투자수익성도 좋지 않을 전망이다. 전문컨설팅업계는 10조원 투자를 기준으로 2조원 정도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삼성이나 현대차는 자금력, 수익성 검토와 함께 한전부지 매입이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한 공감대 확보가 중요하다. 현대차가 글로벌 5위 완성차업체의 위상에 걸맞게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하겠다는 세부 청사진을 내놓은 것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삼성은 청사진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전이 8월29일 입찰공고를 낸 뒤에도 계속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삼성은 이미 서울 서초동에 대형사옥을 확보해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현대차의 매입 목적이 ‘내집 마련용’이라면, 삼성은 ‘임대용’에 가까운 셈이다. 삼성의 ‘부동산 사랑’은 재벌가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임대용 부동산에 거액을 투자하려는 것은 선뜻 이해가 안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3세 승계와 계열분리를 염두에 두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적극적이라는 얘기를 포함해 여러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삼성의 한 핵심임원은 “한전부지 입찰은 최종적으로 누가 더 많은 돈을 써내느냐로 승자가 결정되는 ‘머니게임’이다. 현대차처럼 미리 떠드는 것은 땅값만 더 올리는 바보짓이다”라고 비웃는다. 하지만 한전부지 입찰은 사회적 공감대 확보가 돈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검증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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