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선을 흔드는 '아마존 여전사'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 대선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다. 여론조사에서 예상득표율 3위를 달리던 유력 야당 후보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 브라질 정치권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던 브라질사회당(PSB)의 에두아르두 캄푸스 후보는 지난 8월13일 리우데자네이루 시를 떠나 상파울루 주 과루자 시로 가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했다. 브라질은 49세의 젊은 정치인 캄푸스의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했고, 대선 캠페인도 한동안 중단됐다.

캄푸스의 사망은 대선 구도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여론조사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선두를 유지하며 재선을 기약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강력한 적수를 만나게 됐다. 브라질사회당이 캄푸스를 대신해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마리나 시우바다.

시우바는 1958년 2월8일 브라질 북서부 아크리 주의 주도(州都)인 히우브랑쿠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리아 오스마리나 마리나 다 시우바 바스 지 리마’다. 포르투갈계와 아프리카계 이민자의 후손인 시우바는 대선 후보 등록 서류에 자신의 인종을 흑인으로 표기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시우바는 16살 무렵이 돼서야 독학으로 글을 깨쳤다. 이른 나이에 참여한 사회운동과 군사독재정권 시절(1964∼1985년)의 반정부 조직 활동 경험은 그녀를 정치의 세계로 이끌었다.

1984년에 대학을 졸업한 시우바는 최대 규모의 노동단체인 중앙노동자연맹(CUT)에서 활동했다. 가톨릭계의 권유로 1985년 노동자당(PT)에 입당했고, 노동계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를 만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나섰다. 시우바는 1994년 의회선거에서 최연소(36세)로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고, 2002년 연방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했다.

2003년 브라질 사상 첫 중도좌파 정권을 출범시킨 룰라 대통령은 시우바를 환경장관에 기용했다. 시우바는 개발 논리를 앞세우는 각료들과 수시로 충돌하며 아마존 환경 지킴이 역할에 충실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아마존 여전사’다.

시우바는 아마존 삼림지역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려는 정부 계획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으며, 결국 2008년에 환경장관직을 사임하고 녹색당(PV)으로 옮겼다.

시우바는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모토로 내걸고 2010년 대선에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 노동자당의 호세프 후보(46.91%)와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의 주제 세하 후보(32.61%)에 이어 득표율 3위(19.33%)를 기록했다. 당시 대선에서 시우바는 3위에 그쳤지만 2천만 표 가까이 얻으며 전국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시우바는 환경보호를 행동강령으로 하는 정치·사회단체 연합체 ‘지속가능 네트워크’를 결성해 올해 대선을 준비했다. 그러나 ‘지속가능 네트워크’가 정당 설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연방선거법원의 해석 때문에 독자적인 대선 출마가 어려워지자 브라질사회당과 손을 잡고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

캄푸스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시우바를 4년 만에 대선 정국의 전면에 나서게 만들었다. 상황은 2010년 대선과 많이 달라졌다. 시우바는 녹색당보다 당세가 훨씬 강한 유력 야당의 후보로 나서는 데다 지지율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호세프 대통령과 비교되면서 단숨에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올해 대선은 표면적으로 호세프 대통령과 시우바 후보, 브라질사회민주당의 아에시우 네비스 후보의 3파전 양상을 띠고 있다.

8월 중순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 예상득표율은 호세프 36%, 시우바 21%, 네비스 20%로 나왔다. 1차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고 결선투표가 시행되고, 호세프와 시우바 대결하면 시우바가 47% 대 43%로 승리할 것으로 전망됐다.

정치권과 언론은 대선 판세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며 “2014년 대선은 시우바가 어느 정도의 득표력을 보일 것인지에 달렸다”고 흥분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급변하자 급해진 쪽은 노동자당과 호세프 대통령이다. 노동자당 지도부와 호세프 대통령의 캠프는 대선 전략을 전면 수정하는 한편 시우바를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나섰다. 2010년 말 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룰라 전 대통령을 대선 캠페인의 전면에 내세웠다. ‘시우바 열기’를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는 초조감이 반영된 움직임이다.

올해 대선은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재선을 노리는 호세프 대통령과, 2010년보다 유리한 여건 속에서 브라질 사상 첫 흑인 여성 대통령의 꿈을 키우는 시우바 후보 간의 흥미로운 대결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서는 10월5일 정·부통령과 27명의 주지사, 연방상원의원 81명 가운데 3분의 1, 연방하원의원 513명 전원, 27개 주의 주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가 시행된다.

대선은 10월5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득표율 1, 2위 후보가 10월26일 결선투표로 당선자를 가린다. 결선투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승리한다.

한편 올해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차기 정부의 기본 정책방향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대선에는 군소 후보를 포함해 모두 11명이 출마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노동자당을 거쳐간 인사들이다. 후보들의 정치적 성향이 중도좌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점은 시우바 후보도 마찬가지다. 올해로 창당 34년을 맞은 노동자당이 브라질 정치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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