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현판기행' 출간한 김봉규 영남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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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규 영남일보 편집위원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궁궐이나 서원, 정자, 누각, 사찰, 고택 등에는 옛 현판들이 걸려 있다. 사람들은 흘낏 한번 쳐다볼 뿐 쉽게 지나치지만, 그는 달랐다. 고개를 들어 ‘건물의 얼굴’인 현판의 가치에 주목했다.

김봉규 영남일보 편집위원이 최근 ‘현판기행’을 출간했다. 지난 2012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영남일보에 연재한 ‘이야기가 있는 옛 懸板(현판)을 찾아서’를 묶은 것이다. “현판은 흔히 볼 수 있는 데다 한자로 써 있어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죠. 유·무형의 큰 가치를 지닌 소중한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 관리나 연구가 되지 않아 제대로 가치를 발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함부로 방치되는 상황까지 접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죠.”

이야기가 있는 현판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볐다. 직접 사진을 찍고 옛 문헌과 사료를 보며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늘 고심했다. 그중 경북 영천의 팔공산 은해사에서 만난 추사 김정희의 ‘불광(佛光)’ 편액 일화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힘 있는 필획에 부드러운 완숙미로 추사의 대표적 수작으로 꼽히는데,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이 두 글자를 얻기 위해 벽장 속에 가득할 정도로 실패작을 냈다. “당대 최고의 대가인 추사도 득의작 하나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는 사실에 배우는 바가 크다”고 김 위원은 말했다.

‘불광(佛光)’의 ‘불(佛)’자 뒤쪽 세로 한 획이 가로 두 글자를 합한 길이만큼 길다는 점도 독특하다. 당시 은해사 주지가 유별난 글씨에 고민을 하다, 결국 일반적인 가로 편액을 만들기 위해 ‘불(佛)’자의 세로 긴 획을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중에 절을 방문한 추사가 편액을 보고는 바로 떼어오게 해 절 마당에서 불태워버렸어요. 그 후 다시 원래 작품대로 만든 편액이 걸리게 됐는데, 예술작품에 대한 안목의 중요성을 잘 일깨워주죠.” 경북 경주 불국사와 칠곡 송림사 ‘대웅전’ 편액,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 편액의 ‘대웅전’ 글씨가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흥미로웠다.

그는 영남일보 복간 초기인 1990년 논설위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논설위원직을 따로 채용했는데 시험을 쳤다가 덜컥 합격한 것. 대기업과 공사 등을 거쳐 기자로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다. 누군가는 굳이 어려운 길을 갔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기자가 ‘일할 맛’이 난단다.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완성품(기사)이 다르죠. 발로 뛰고 취재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각 분야의 고수를 만나 많이 배울 수 있어요.”

기자생활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보낸 그는 문화와 인문학에 천착해있다. ‘불맥, 한국의 선사들’, ‘머리카락 짚신’, ‘한국의 혼-누정’, ‘조선 선비들의 행복 콘서트’,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 등 많은 책을 발간했다. 본래 동양의 사상과 철학,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문화부에서 수차례 연재기사를 쓰며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앞으로도 기자생활을 통해 쌓아온 식견과 자료, 인맥 등을 활용해 “남다른 기사, 독자들이 애독할 연재기사 등을 더 많이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퇴직할 때까지 취재하며 기사를 계속 쓰고 싶다”는 그는 최근엔 음악 분야를 파고들고 있다. “사람은 모두 행복한 삶, 보람 있는 삶, 진리 속의 삶을 원할 것입니다. 인문학은 이런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정신적으로 삶을 풍부하게 하는 마음의 양식이죠.”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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