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8월 저널리즘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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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일본에서 8월은 전쟁관련 기획물이 집중되는 달이다. 평화보도니, 반전기획물이니 하면서 피폭체험담을 포함해 새로운 전쟁체험담, 다큐멘터리들이 지면과 화면을 통해서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시기다.

그런데 패전일(일본에서는 종전일)인 15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전쟁관련 보도나 방송이 자취를 감춘다. 8월 초에 일시적으로 진행되는 미디어의 성향을 ‘8월 저널리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비참한 역사를 개인의 기념일처럼 가볍게 치부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8월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는 과거를 바라보는 일본 언론의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8월에 전쟁 관련 보도가 유달리 많은 것은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희생된 히로시마(6일), 나가사키(9일)의 원폭 투하가 일본인들의 뇌리에 전쟁이라는 이미지로 강렬하게 남아 있고 미디어를 통해서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왕이 항복을 선언한 날이 15일이라는 것도 일본인들의 관심이 이 시기에 집중된 한 원인이기도 하다.

NHK가 16일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항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 ‘승전 그룹’과 패전을 받아들이는 ‘패전 그룹’간의 갈등을 조명한 것도 그런 관심의 표명이다.

올해의 ‘8월 저널리즘’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언론사는 아사히신문이다. 그렇다고 아사히신문이 새로운 특집이나 특종을 발굴한 기사를 게재해서 주목을 끈 것은 아니다. 독자들의 궁금증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지금까지의 위안부 보도를 검증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한 것이 전부다. 지난 5일과 6일 양일에 걸쳐 두 개 면을 ‘위안부 문제를 생각한다’는 특집으로 채운 것은 독자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이례적인 편집이었다.

특히 화제를 모은 것은 제주도에서 위안부로 삼기 위해 조선 여성들을 강제로 데려왔다는 요시다 세이지씨의 증언을 토대로 “위안부는 강제연행 되었다”고 보도한 내용이 오보였다는 것을 인정한 대목이다. 아사히신문은 제주도에서 200여명의 조선인 여성을 강제로 끌고 왔다는 증언을 요시다씨가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해 의심하지 않았다는 당시 담당기자의 증언을 보도하는 한편 오보를 인정하기까지의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번 특집기사가 실리게 된 데는 위안부 문제를 날조했다는 보수진영의 공격과 비난이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압력과는 별도로 자사의 오보를 솔직히 인정한 점은 언론의 건전성과 설명책임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런데 일부 주간지와 월간지들은 이번 기회를 ‘아사히 위안부 조작설’로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호기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이래도 일본이 나쁜가!…위안부 대 오보 아사히신문의 중죄’(주간 포스트, 8월29일자), ‘아사히 종군위안부 보도는 거짓말에서 시작됐다’(SAPIO, 9월호), 산케이가 발행하는 월간 정론은 아사히신문 비판보다 한발 더 나아가서 ‘고노담화 검증과 한국인 미군 위안부’(9월호)라는 특집을 게재했다. 너네들 코에도 똥이 묻었는데 이래도 일본을 비난할래!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최근에 주한 일본 대사관 근무 경력을 가진 한 보수인사의 발언에서도 우익들의 언론관을 엿볼수 있었다. 그 인사는 아사히신문의 오보가 작금의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단언했다. 이 인사는 이번 보도로 인해서 한국이 더 이상 이 문제로 일본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시바 자민당 간사장도 이 문제를 “국회에서 (보도를) 검증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거들었다.

보수우익인사들이 아사히신문 때리기에 힘을 쏟는 것은 요시다씨의 증언이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유엔인권위원회의 자료로 채택되면서 일본이 (위안부를) 성노예로 사용했다는 국제적인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검증’ 프레임으로 아사히신문의 비판보도를 봉쇄하려는 보수우익의 의도는 성공할 것인가? 8월이 며칠 남지 않았음에도 ‘8월 저널리즘’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아사히신문의 시도를 통해서 ‘8월 저널리즘’을 뛰어넘는 일본 언론의 분투노력을 기대해 본다.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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