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000m, 그곳에 사람의 향기가 있다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 트레킹 중앙일보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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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네팔 자누 동벽 인근의 설산을 비췄다. 소금을 뿌린 것 같은 하얀 눈밭이 눈에 들어왔다. 저 아래 100km 정도 떨어진 민가에는 붉은 광선이 번쩍였다. 레이저를 쏘듯 번개가 치고 있었다. 새벽에 볼 일을 보러 나온 기자는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멀리 떨어진 터라 자신에게 다다를 때쯤 수그러드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은 다른 곳이구나, 나는 단절된 곳에 혼자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히말라야 자누 동벽 원정대에 동행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와 히말라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06년 11월 2주짜리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취재하며 히말라야와 처음 연을 맺은 그는 이후 15번에 걸쳐 네팔, 중국, 파키스탄 등지를 방문해 500여일을 히말라야에서 지냈다. 그동안 김 기자는 2007년 3월 네팔 로체남벽·로체샤르남벽원정대, 2009년 6월 파키스탄 스판틱골드피크원정대, 2010년 6월 파키스탄 가셔브룸5원정대 등 의미 있는 등반에 동행하며 생생한 기사를 썼다. 2012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는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14개 봉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차례로 걸으며 주말 섹션에 25편의 기사를 연재했다. 단순히 기사만 쓴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07년 로체남벽·로체샤르남벽원정에서 1캠프까지 로체남벽 등반에 성공했다. 2009년 스판틱골든피크원정에서는 베이스캠프 매니저 역할을 하며 등반을 직접 돕기도 했다.

등산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은 김 기자에게 동행취재는 매순간이 도전이자 고난이었다. 체력도 중요했지만 고산지대에서 산소가 부족해 생기는 고소 증세가 그를 괴롭혔다. 육체적인 고통만이 다가 아니었다. 캠프에서 한 달 간 생활하며 경미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김 기자는 이 위기를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이겨냈다.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 고소 증세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고 우울증이 오면 시를 쓰며 버텼다.

그가 히말라야를 걸으며 본 것은 푸른 산천초목과 빙하가 흘러내리는 협곡, 거대한 설산 등이었다. 그러나 김 기자의 기억에 가장 남은 것은 압도적인 절경보다 사람이었다. 그에게 등반을 가르쳐주고 함께 걷던 산악인들은 그의 소중한 인연이 됐다. 안타깝게도 그들 중 절반은 히말라야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김 기자는 아직도 자신에게 등반을 가르쳐줬던 故 장지명씨의 시계를 차고 다닌다. 2011년 장씨가 촐라체 정상을 앞두고 추락했을 때 차고 있었던 시계다. 그는 14개 베이스캠프를 찾았을 때도 이 시계를 차고 다니며 장씨를 생각했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친구들도 그에게 많은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기도하는 네팔 고산족들을 보며 그는 그들의 순수함에 매료됐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봉우리를 묻는 질문에도 네팔의 마나슬루를 꼽았다. 길도 예쁘지만 인심이 좋다는 게 이유였다.

김 기자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많다. 히말라야를 걸었으니 이제는 실크로드를 걷고 싶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도 좋다고 했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걸었던 프랑스 저널리스트 베르나르 올리비에처럼 실크로드 여정에 동행하며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쓰는 것이 그의 꿈이다.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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