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사과 요구'에 더 민감한 일본 언론

[글로벌 리포트│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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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8월 말 서울에 부임 중인 일본의 한 특파원과 인사를 나눴다.
“요즘 여러가지로 바쁘시죠.” “요즘 저한테 여러가지 안부인사를 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냥 바쁘시죠’라는 분들도 있고 ‘독도 때문에 바쁘시죠’라고 인사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일왕 건 때문에 바쁘시죠’라고 하는 분은 없네요.” “예! 그건 무슨 뜻인가요?” “일본은 독도문제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발언을 더 민감하게 보고 있어요. 그 쪽에 대한 기사요구도 많습니다.”

독도 문제가 발생하면 한·일 기상도에 천둥·번개 마크가 등장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올해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중국, 러시아와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토문제와 비교해도 과민하다는 느낌이다. 더더욱 이번 문제를 다루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서도 이전과 다른 변화가 느껴진다. 같은 영토문제라고 해도 2010년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북방영토를 방문한 것과 비교해보면 일본 정부나 미디어의 대응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2010년 11월 1일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러시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방영토를 방문했다. 북방영토는 4개 섬으로, 독도와 같이 양국이 영유권을 서로 주장하는 곳이 아니라 2차 대전 이전까지 일본 영토였던 곳이다. 일본이 강하게 반발해도 부족하지 않을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일본은 같은 해 9월부터 대통령의 방문계획이 러·일 관계를 악화시킬 요인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완전히 무시당한 꼴이 됐다. 러시아는 여름에 북방영토 근방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9월 2일을 대일 전승기념일로 지정했다.

북방영토 방문을 ‘국내출장’이라고 설명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수상으로 자리를 바꾼 올해 7월에도 10명의 주요 각료를 대동하고 북방영토를 재차 방문했다. 이번 일은 6월에 멕시코에서 열린 러·일 정상회담에서 북방영토 문제 논의를 재활성화하기로 일치한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북방영토 문제를 진전시키고 싶었던 노다 총리에게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산케이신문은 2010년도에 일본정부의 대응이 일관되지 않은 것이 러시아를 거만하게 만들었다며 단호한 대응을 요구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비난보다는 ‘대응할 외교카드 없다. 러, 정냉경열(政冷經熱) 노려’(11월 2일자), ‘주권에 둔감한 수상 일본을 불행하게 한다’(11월 2일)는 기사에서 오히려 일본 정부의 무능한 외교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비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당일 밤 일본은 항의의 표시로 주한 일본 대사를 소환했다. 11일부터는 일본 언론들의 표현도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케시마’에서 ‘시마네현 다케시마’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한 2005년부터 보수언론들이 이런 표현을 주로 사용해 왔지만 이번같이 교도통신이나 NHK같이 주요 언론사들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교도통신은 외신용과 국내용 기사에서 표현을 나눠서 사용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월 14일 일왕의 방한조건으로 사죄를 요구하자 보수언론에는 실망, 표변, 기대, 외교적인 무례, ‘상식의 선을 넘어선’ 등의 용어나 표현이 눈에 띈다. 이번 발언의 배경을 두고 임기 말 구심력이 약해진 이 대통령의 ‘애국적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고 싶은 치적 만들기라는 설명이다.

보수언론들은 반일카드가 한국의 진보 보수에 상관없는 만능카드라고 냉소하고 있다.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 일본 정부의 통화스와프 재검토와 일왕 사죄발언 철회 요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보수언론들은 정상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서는 위안부 문제를 사죄한 고노담화부터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폐하에 대한 사죄 요구, 정부는 폭언 철회를 요구하라’고 주장했다. 요미우리도 이 대통령의 일왕발언은 결례라고 사설에서 문제삼았다.

독도 문제보다 일왕사과 요구에 더 민감한 일부 보수 미디어. 한인타운에서 우리국민들이 우익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세웠던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일본 언론들의 자제가 필요한 때다.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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