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억새 태우기 참사 현장 기록
제222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부문(사진)/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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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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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가 일어난 2월9일, 유난히도 추운 날 이었다.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채 박일호 기자와 현장으로 향했다. 오후 4시께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취재 구역을 분담해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6시10분께 행사 시작과 함께 억새밭 사방에서 동시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억새불은 정점에 달하며 소위 그림이 되는 장면을 곳곳에서 연출하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과 관광객들이 완벽하게 조화가 되는 환상적인 사진구도로 예년 행사 때는 볼 수 없었던 기막한 장면이었다.
좋은 사진을 건졌다는 생각에 안심하며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그 순간 메케한 연기와 함께 집채 만한 불길이 우리 쪽을 덮치기 시작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일대를 가득 메웠고 카메라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생각보다 ‘이러다가 큰 변을 당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앞서는 순간이었다. 관광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공포를 토해 냈다. 나도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 입을 막은 후 메케한 연기와 싸움을 벌여야 했다. 불길을 향해 돌아서 카메라를 들이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진기자라는 생각을 잠시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아차 하는 생각에 정신을 차린 후 카메라를 들이댔다. 숨을 가다듬은 후 돌아서서 2~3컷을 눌렀다가 다시 돌아서서 두 눈을 감고 입을 막아야 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최악의 촬영조건이었다.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소리만이 귓전을 때릴 뿐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수십 컷의 사진이 완성될 무렵 지옥 같은 상황도 서서히 끝나가는 듯했다. 불과 10여 분 만에 일어난 대형 참사였다.
여기저기서 가족의 안전을 확인하느라 모두들 전화기를 들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나도 반대편에 있던 박일호 기자와 통화를 시도해봤지만 불가능했다. 가까스로 박 기자의 안전을 확인하고 마감을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아들과 아내, 남편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절규만 뒤로 한 채…. 시꺼멓게 변한 5만여 평의 억새밭 위로 무심한 대보름달만 서글픈 하산 길을 밝혀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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