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이면서 페미니스트라면 두 눈을 뜨고 있는 것이지만 기자이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를 창간한 글로리아 스타이넘(68)이 기자협회와 여성부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지난달 27∼28일 제주도에서 열린 ‘2002 여기자 세미나’에 참석한 스타이넘은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긴 금발머리와 가죽바지 차림의 자신감 있는 모습, 가부장적 언론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날 ‘여성운동과 언론’을 주제로 강연한 뒤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여성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주변의 문제, 소수의 문제, 특별한 문제로 다룰 것을 강요받고 있다”며 “여성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약자와 소수를 끌어안는 기사를 쓸 때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타이넘은 1956년 스미스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자유기고가로 언론 활동을 시작, 플레이보이클럽의 바니걸로 잠입해 클럽 내의 여성비하와 성희롱을 폭로하는 르포 기사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72년 미국 최초의 여성운동 잡지 <미즈>를 창간, 초대 편집장으로 활동했으며 ‘전미여성기구’ ‘미즈재단’ ‘여성노조연합’ 등을 창립해 미국 여성운동을 이끌어 왔다. 결혼 여부에 따라 ‘Mrs’ ‘Miss’로 구분되는 여성의 호칭을 문제삼아 지금은 널리 알려진 ‘Ms’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으며 지난 99년에는 ABC방송이 뽑은 ‘20세기를 빛낸 100명의 여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리랜서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언론사 편집장들은 ‘예쁜 여자는 필요없다. 글 쓰는 기자가 필요하다’며 나를 쫓아냈다. 당시 미국에서는 결혼 여부에 대한 차별과 구직광고에서의 남녀 구분이 심했고, 여 기자는 대부분 미용이나 아이들에 대한 분야로 활동이 국한됐다.” 미국에서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도 여성의 사회 활동이나 정치적 글쓰기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고 페미니즘과 관련된 출판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스타이넘은 72년 미국 최초의 페미니즘 잡지 <미즈>를 창간했고, 당시 미국 언론은 <미즈>가 6개월 이상 못갈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으나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는 <미즈>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말하고싶었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문화창작물, 정치물, 사건 심층보도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미즈>가 발간된 뒤 15년 동안 ‘MS’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고 나는 ‘MS’의 Miss 스타이넘으로 소개됐다.”
스타이넘은 언론이 여성주의적 관점을 놓치고 있음을 지적하며 젠더와 성정치적 관점에서 사회 현상을 바라볼 때 ‘온전한’ 기사를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타이넘은 “언론은 아직도 여성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여성의 문제라서 심각하지 않다고 여긴다. 이것은 전체의 그림을 전달하는데 큰 오류를 낳게 된다”며 “기자이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여성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우리 모두의 문제, 전체의 문제, 보편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사회적으로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이넘은 “자기 자신을 믿고 좋아하자, 함께 배우고 연대해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시 헛돌지 않도록 하자”고 말을 맺으며 한국의 여성 언론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가 언론인으로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책임이자 선물이다. 반쪽의 진실이 아닌 전체의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간디는 ‘가장 가난한 자들과 가장 약한 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곱씹어보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침에 신문을 보는 여성들이 ‘당신의 기사를 봤고 도움이 됐습니다.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가장 큰 보상을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