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 착취 실태를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이하 불꽃).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인 이들이 조선일보를 포함한 기성 언론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꽃은 지난 4월28일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에 ‘ㅇㅇ일보 저격’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올려 “요즘 언론은 가해자의 신상 폭로 또는 경찰의 수사 브리핑에 의존해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보도하고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대표적으로 지난 4월13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제목에 ‘단독’을 건 해당 기사에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25)이 최근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 중에 대중에게 많이 알려질 수밖에 없는 직업군의 여성도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13일 알려졌다”고 보도하며 피해 여성의 직업을 제목과 본문에서 언급했다. 조선은 다음 날 신문 12면 톱기사에서도 피해자의 직업군을 상세하게 특정했다.
불꽃은 “이 단독기사는 명백히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끼쳤다. 다른 언론 역시 공소 내용 검열 없이 피해자를 특정할만한 보도를 이어갔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중앙일보도 지난 4월23일 ‘단독’을 내건 기사에서 특정 피해자의 직업은 물론 ‘미성년’이란 점까지 제목과 본문에 적시했다. 해당 기사는 현재 온라인에서 삭제돼 찾아볼 수 없다.

MBC도 지난 4월13일 ‘뉴스데스크’에서 조씨 일당이 개인정보를 빼낸 대상에 특정 직업군이 포함돼 있다는 내용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도 비슷하게 보도했다. 대부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이었다. 조씨와 그의 공범들이 잇따라 검거되면서 경찰 조서와 검찰의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데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까지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23일 긴급성명을 내고 “상세한 공소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 피해자 검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주빈이 설계한 범죄가 반복된다”며 공소장을 통한 2차 가해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텔레그램 사건 박사방 사건에서 검찰 작성 43장의 공소장과 14장의 범죄 일람표가 언론을 통해 상세한 내용으로 공표되고 있다”면서 “피해를 특정하는 구체적인 표현이 피해자 색출과 유포로 이어지고, 국내외 포털사이트는 ‘영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와 피해자를 지칭하는 검색어와 텍스트, 댓글을 그대로 두고 있다. 피해자들이 겪는 끔찍함을 하루하루 한주 한주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n번방 사건을 장시간 추적 보도해 온 오연서 한겨레 기자도 지난 4월17일 〈우리 사회를 ‘거대한 n번방’으로 만드는 언론 보도들〉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피해자의 신상을 도구 삼아 성착취를 일삼은 엔번방 사건 가해자들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피해자들이 다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언론 보도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엔번방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면서 “피해자의 ‘생존권’에 앞서는 국민의 알권리는 없다”고 꼬집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4월14일 경향신문 〈피해자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제하의 기사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직업을 특정하는 보도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서 기사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조주빈이 일반방에서 고액방으로 회원을 유도했던 방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며 “피해자가 연예인이라고 해서 조씨의 범죄가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피해자 인권 보호에는 경중이 없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8년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에서도 “피해자의 얼굴, 이름, 나이, 거주지, 학교, 직업, 용모 등을 직접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법적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불꽃은 이날 동영상에서 “언론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숨죽여야 하는 사회 분위기를 환기해야 한다”면서 “성범죄 피해자를 움츠러들게 하는 보도 관행, 이제는 고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재 언론사들이 써야 하는 기사에 대해, 기자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면서 △‘성 산업 카르텔’ 해체를 위한 보도 △기사 단어 하나하나에 유의할 것 △피해자 관점의 보도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