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영 기자 2019.06.19 14:46:11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고인의 삶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한정하기엔 너무나 큰 것이었다. 언론은 여성운동의 선각자이자 민주화 투사, 한반도·세계 평화에 힘쓴 평화운동가로서 고인을 일제히 조명하며 의미 있는 한 생에 애도를 표했다.
지난 11일 한겨레는 1면 톱과 2·3면을 통째로 할애하며 “고인은 가부장제 아래 신음하던 여성들의 권익 실현을 위한 싸움에 앞장선 1세대 여성운동가였고, 정치인 김대중의 아내로서 50년 가까이 민주화 운동의 동반자로 살았으며, 삶의 마지막 시기를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바친 평화운동가였다”라고 적었다. 12일 사설에선 “이희호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에 앞서 스스로 빛을 발한 한국 현대사의 ‘큰 별’이었다”고 평했다.
고인의 생에 대한 평가는 보수지라고 다르지 않았다. 중앙은 12일 사설 <‘큰 어른’ 이희호 여사의 특별한 마지막 메시지>에서 “이 여사는 영부인 이전에 세 가지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여성지도자’이자 ‘큰 어른’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며 “그 자체가 현대사인 이 여사의 97년 삶을 돌아본다면, 그가 상징해온 것들은 여성·민주주의·인권·평화 등의 소중하고 값진 가치였다”고 적시했다.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는 11일부터 지면과 메인뉴스를 통해 고인의 소식을 전했다. 이날 경향, 국민, 동아, 서울,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 등 주요신문에 타계 소식이 담겼다. 1면에 별세 뉴스를 전하고 별도 면이나 일부 톱기사로 생애를 되짚는 방식이었다. 본격적인 기사는 12일자 지면에 다수 나왔다. 고인이 10일 밤 늦은 시각 숨을 거두며 제작공정상 11일자에선 집중조명하긴 어려웠던 탓이다. 고인이 위독했던 10일부터 발인일인 14일까지, 경향·국민·동아·서울·세계·조선·중앙·한겨레·한국 등에서 ‘이희호’를 언급한 지면 콘텐츠는 166개에 달했다.
특히 가장 많은 콘텐츠가 나온 12일(62건), 조선·동아를 제외한 신문은 관련 사설로 사회운동가 ‘이희호’를 애도했다. <이희호 이사장 별세,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감동의 삶>(경향), <여성인권·민주화 운동가 이희호 여사를 떠나보내며>(서울), <DJ의 영원한 동지이자 여성운동의 거목 故 이희호 여사>(세계) 등이 사례다. 방송사 메인뉴스에서도 같은 관점이 확인된다. KBS <“혼인신고를 합시다”…여성 인권과 함께 했던 ‘1세대 여성운동가’>(11일), MBC <여성운동가…사형수의 아내…DJ의 ‘평생 동지’>(11일), SBS <여성 운동가로서의 삶 재조명…이틀째 李 여사 추모 물결>(12일)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인식은 고인을 부르는 ‘직함’에 반영되기도 했다. 대다수 언론은 익숙한 호칭인 ‘여사’를 사용했지만 일부는 ‘이사장’ 호칭을 고집했다. 한겨레는 첫 보도부터, 경향은 지난 12일자 기사부터 ‘이사장’ 호칭을 사용했다. 경향 한 기자는 “‘DJ의 아내’로서 정체성이 익숙하지만 그 이상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산 인물이라 ‘이사장’이란 호칭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별이 진 자리엔 말과 글만이 남아 한 생의 족적을 더듬더듬 비췄다. 남은 자의 몫은 고인을 제대로 기억하고 유지를 이어가는 것일 게다. 이 이사장 생전 25차례를 만나 2년여간 장기연재를 하고 ‘이희호 평전’을 집필한 고명섭 한겨레 논설위원은 17일 통화에서 “임종 몇 시간 전 문병을 갔었다. 눈은 감고 계셨지만 말을 알아들으시는 거 같았고 손이 따뜻해서 ‘좀 더 계시겠구나’ 했는데 그날 밤 돌아가셔서 놀랐다”고 말했다. 마지막 부고기사까지 작성한 그는 “평생을 여성·민주화 운동가로 지냈고 마지막 10년 간은 평화운동가로서 역할했다. 본인을 그렇게 기억해주길 바라셨고 동의한다. 단순히 대통령 부인으로 환원하기엔 너무나 큰 인물이고 그 삶을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리했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