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씨가 사회개선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겠다며 한국언론에서는 처음으로 토론면 ‘왜냐면’을 만든 지 석달째가 되고 있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똘레랑스(관용)’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던 그가 생각하는 한국언론과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에 대해 들어봤다. 비가 올 듯 말 듯하던 지난 3일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만난 그는 가는 담배를 물고 미소섞인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거처 마련하는데 시간을 많이 뺏겼다. 4월 18일에 합정동에 거처를 마련했다. 다세대주택 14평으로 방이 두 개다. 딸과 같이 있으니까 방이 두 개는 필요했다. 엊그제 냉장고도 사고, 가스렌지 책상도 샀다. 침대 농은 빌리고. 이제 시작이다.”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40만원. “목돈이 안들어 사글세가 더 괜찮다”는 그는 “(집 구한 게) 황감한 일”이라며 웃는다. 귀국한지 3개월간 딸이 살던 봉천동 원룸, 누가 빌려준 마포집, 역삼동 친구 오피스텔로 옮겨다녔던 뒤였다.
-한겨레에 입사한 이유는. 원래 기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었나.
“내나이 55세면 명퇴할 나이인데 받아줄 데가 없을 것 같았다. 한겨레에 문을 두드렸더니 고맙게도 받아줬다.(웃음) 토론면은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고, 지난해 10월 한겨레에 제안했었다.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프랑스에서 두 나라 언론을 견주어 보면서 더 크게 느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 둘을 꼽으라면 교육과 언론이다. 교육과 언론은 사회의 가치, 준거점과 구성원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의식을 만든다. 특히 우리 신문은 문제가 많다. 자유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조중동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나. 잘못된 역사 위에 올라서서 쌓은 부와 영향력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 비판이 가능한데 그들은 자본이면서 권력이다. 그래서 ‘공익’이 우선되지 않고 사주 이익, 자사 이익이 판단 기준이 된다. 설령 보수라면 지켜야 할게 있어야 하는데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수구기득권’이다.”
-20여년 만에 돌아온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나.
“물적 부분에서 빈부차는 심하지만 절대치는 올라갔다. 그러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발전노조 파업 이후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회사측의) 가압류 행위를 보면 기득권층이 얼마나 지독한가 하는생각이든다. 간디는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데, 단 한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다. 기득권의 탐욕은 끝이 없다.”
-한겨레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2주에 한번씩 칼럼(빨간 신호등) 쓰고 일주일에 두 번 ‘왜냐면’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들어오는 원고를 받았는데, 앞으로는 자발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유하려 한다. 두 달에 한번 내가 지면에 직접 개입을 할 생각이다. 외부 사람들 만나면서 한겨레 홍보도 하고 있다.”
그의 홍보 방식은 독특하다. 한겨레를 구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명함을 주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한겨레 구독 신청서를 받고서야 명함을 건넨다. “집요하죠? 기득권이 집요하기 때문에 우리도 집요해야 한다”는 그는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대체로 보고 있기 때문에 구독부수를 크게 늘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왜냐면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한국 사회의 토론문화는.
“처음 우려했던 대로 한국의 자칭 보수들이 가짜 보수라는 것과 합리적인 논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그들은 힘의 논리로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지 토론을 벌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교육부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수차례 실렸지만 책임자의 반론이 전혀 없었다.
한국은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사회다. 힘의 논리를 쉽게 없앨 수는 없겠지만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사회 모순이 첨예하기 때문에 왜냐면에 세련된 글이 나오기는 힘들다. 예컨대 기득권이 박정희 기념관을 추진하고, 고교평준화 폐지를 외치는데, 슬픔과 분노가 커 어떻게 세련된 글이 나오겠는가.”
-한겨레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인다. 하지만 현정권 들어 한겨레 논조가 무뎌졌다는 비판도 많은데.
“(애정은) 당연하다. 언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겨레가 한국 언론에서 갖는 위치를 아니까 그렇다. 조중동은 정보가 있다고 해서 보는데 한겨레는 ‘이념적 동질성’ 때문에 본다. 이게 어려움이다. 조중동은 이념적 차이가 발견돼도 유익한 정보가 있으면 볼 수 있는데 한겨레는 그렇지 않다. 우경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처음엔 한겨레의 이념성에 애정을 가졌는데 현재는 못따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홍 위원은 이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의 균형점을 생각해야 한다. 조중동은 현정권에 대해 몰매를 퍼붓고 있다.‘대북퍼주기’라는 말을 만드는 것이 양식있는 행위인가. ‘퍼주기’는 비판하면서 왜 미국에 ‘바치기’는 얘기하지 않는가. 오히려 수십배는 더 많은데 말이다. 물론 김대중 정권의 반노동자적,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해야 한다. 다만 조중동의 일방적인 매도에 한겨레가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겨레에 대한 쓴소리도 필요하지 않은가.
“한겨레에서 내가 제일 막내다. 아직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한겨레는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된 국민주 신문이다. 구조적으로 합리적 토론이 가능하다. 문제가 있더라도 사주 의지에 가로막히지 않고, 해결할 길이 있다.”
재차 비판적인 견해를 물었지만 이 질문만은 “나중에 하자”며 답변을 피해갔다.
-젊은 기자들과 함께 하면서 드는 생각은.
“글쎄. 우선 젊어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패기는 좋은데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하루하루 긴장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 않나 싶다. 여유가 있으면 탐구하지 않는다. 그게 일반적 현상이다. 남하고는 잘 싸우는데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왜냐면’을 시작하면서 그는 “한국 사회 개선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작지만 사회 변화, 개선할 수 있는 일에 몸을 던지는 삶이 좋다”고 한다. 그런 그의 문제의식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벌이 문제다. 족벌, 학벌, 군벌, 지(地)벌, 재벌… 우연이 아니다. 봉건성 때문이다. 언론도 족벌, 재벌이다. 그들은 힘의 논리를 관철하려 한다.”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