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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기획 방송부문]KBS순천 지창환 기자

특별기획, 현장기록-사라지는 역사, '터'

KBS순천 지창환 기자  2007.01.31 17: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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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순천 지창환 기자  
 
지난해 여름,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언젠가 ‘저 명당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되겠나!’ 하며 안타까워했던 어떤 어르신한테서 온 전화인데, 그곳에서 조만간 발굴설명회가 있을 거라는 짤막한 전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곳에서 유물이 나왔다고 해서 발굴기관에 전화를 몇 번 돌려보긴 했지만 번번히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곧 아파트가 들어서기 때문에 관심을 보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식의 답변뿐이었다. 고고학적인 배경이 없는 기자였지만 ‘뭔가 있다’는 의문이 마침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던 차였다.

아파트 공사를 눈앞에 두고 열린 최종 발굴 설명회, 예상대로 기자 한 명 없이 그네들만의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발굴기관과 아파트 개발업체가 ‘쉬쉬’하며 공개를 꺼려 이루어진 일이었다. 시행사로부터 용역비를 받은 발굴기관은 이번 발굴이 개발을 전제로 한 이른바 ‘구제발굴’이고, 또 보존하려 해도 재정부담 때문에 어려울 거라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리고 있었다. 발굴기관이 그런 의견을 갖고 있다면 문화재 보존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 기자는 바삐 설명회를 빠져나가는 고고학자들을 붙잡고 물었다. “너무 아깝다.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망라된 천년유적이다. 전례가 드문 유적이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왜 발굴기관과 고고학자들의 생각이 다를까?” 특별기획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장 덕암동 유적의 가치를 규명해야 했다. 발굴기관이 ‘쉬쉬’하는 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비전문가인 기자가 규명하는 것은 고단한 일이었다. 수많은 서적을 뒤졌고 저명 고고학자들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그들과의 자존심 상하는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과는 덕암동 유적이 천년에 걸친 국내 최대급 집자리 유적이고 환호는 국내 최장, 그리고 호남지역 가야문화의 전래와 영향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유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촬영기자도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밤낮으로 덕암동을 오르기를 수십 번, 강행군을 계속했다.

방송이 나가고 큰 반향이 일었다.
우선 유적의 가치에 놀랐고 유적의 보존이 그 유적의 가치에 있지 않고 ‘보상’이 가능한 지 여부에 달려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개발업자와 발굴기관의 유착 의혹에 발끈했던 것 같다. 또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보다는 선조들의 생활사가 담긴 ‘터’를 중심으로 한 유구와 유적보존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급기야 시민사회에서 유적의 원형보존을 촉구하고 나섰고 순천시도 문화재청에 사적지 지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쩌면 영상기록이라도 남겨보자고 시작한 일이 유적을 지킬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니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