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군가 당신의 지갑을 다짜고짜 빼앗아갔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물건임이 분명한 지갑이다. 처음엔 황당했다가, 이내 울화통이 치밀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임이 분명한데도 자신의 주민등록을 이처럼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상적인 금융거래나 취업부터 어려워진다. 외국에 나갈 수도 없다. 출국에 필요한 여권이 발급될 리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활의 불편 정도를 넘어, 사회복지망에서도 배제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기초생활 보장은 물론 각종 의료보호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문제는 IMF 외환위기 이후 채무독촉 등에 쫓겨 음지로 숨어 다니다 어쩔 수 없이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이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이 점에 주목하고, 주민등록 말소자들의 정확한 실태와 말소에 따른 부당한 인권 침해에 초점을 맞춰 취재를 벌였다. 확인 결과, 가족의 신고나 행정 당국의 직권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비자발적 말소자’가 무려 64만여명에 달했다. 특히 쪽방 거주자 등 취약계층의 비자발적 말소 비율이 52%를 넘었다. 이들은 주민등록이 없어 막노동 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운 데다 온갖 질병과 차별에 시달리며 가난, 절망, 고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실상을 좀더 정확하게 알아보려 했으나, ‘지워진 사람들’의 ‘지워진 흔적’을 찾는 과정이다 보니 취재과정이 쉽지 않았다. 정부 통계자료부터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당사자들이 대부분 장기 채무에 시달리며 도피생활을 하는 터라 이들을 찾아 만나는 것도 힘들었고, 이들이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기억하게 만드는 일도 고통스런 작업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주민등록 말소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던 시민단체 빈곤문제연구소와 현장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주민등록 말소자, 무호적자들과 격의 없는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심층면접을 주선한 이들 현장 활동가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 또한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준 주민등록 말소자, 무호적자들에게도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