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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손제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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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이뤄낸 진보진영의 동력은 이제 소진된 듯 합니다. 앞으로 최소 20여년간은 진보개혁 진영은 숨죽이고 있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필자가 사석에서 진보학계 한 인사의 암울한 전망을 들은 것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 직후였다. 그러고 보니 한숨 섞인 목소리는 어느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학계는 물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 빠르게 번져 가는 패배감과 위기의식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말로만 떠돌던 ‘진보개혁의 위기’ 담론이 투표라는 행위로 구체적으로 표출됐다는 의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법했다.
이것을 심층기획기사로 다뤄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물론 하루하루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장기자들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28회나 되는 장기 기획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시어머니’ 이대근 정치·국제담당 에디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했지만 사실 걱정도 많았다. 진보, 보수 얘기가 나오는 기사는 자칫 지루해져 독자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 단계에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외부의 시선으로 본 진보개혁의 피상적인 문제점이 아니라, 진영 내부의 자기고백과 성찰을 위주로 할 것’과 ‘진보는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곧 우리 생활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자들의 목소리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더 중요했고 100% 기자의 현장 취재에 바탕해 쓰여져야 했다.
기사가 나간 3개월간은 참여 기자들에게 ‘악몽’에 가까웠다. 대부분 각자 부서에서 일하면서 기획을 위해 별도로 일해야 했다. 압권은 원고지 43매 분량에 달하는 장문의 기사를 한 호흡에 쓰도록 한다는 내부 방침이었다. 그나마 단 한번에 데스킹을 통과하는 법이 없었다. “이 부분, 저 부분을 이런 식으로 고쳐서 다시 써오도록.” ‘빨간펜’기사 원고를 받아든 기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거의 새로 취재해서 다시 기사를 쓰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편집부서는 편집부서 대로 ‘이렇게 덩치 큰 기사로 어떻게 판을 짜야 하나’ 곤혹스러워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기획 연재였지만 어쨌든 마무리 됐다. 한국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고, ‘집중편집’이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장황한 문제제기와 원인분석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대안 제시가 마음에 걸린다. 그게 ‘진보개혁 진영’이 가진 역량의 현주소라는 점을 위안 삼아 보지만 영 개운치 않다.